공정성 의심만으로도 법원 질책 마땅
정치적 편향성 관념은 오해에서 비롯
모든 판사가 재판거래 염두하지 않아

▲ 송영승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법원을 향한 국민들의 비판이 매우 높다. 국민, 특히 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한 ‘재판거래’를 서슴지 않은 법원행정처를 필두로 한 법원은 청산해야 할 적폐로 비춰지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사건 당사자는 대법원의 대법정을 점거하기도 했다. 법원 구성원으로서 국민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하여 깊은 사죄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재판의 공정성은 실제로 공정할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것으로 보여야 하기에,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는 것만으로도 법원은 이미 국민들에게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어떤 경우든 사죄에 토가 달리면 그 진정성이 감소하기 마련이다. 이 글은 그 우려를 알면서도, 잘 보이지 않는 사각(死角)지대의 소식을 전달하려는 시도이기도 하고, 현명한 주권자인 국민께 덜 알려진 이야기를 고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법원행정처 근무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이규진 판사는 제1심 재판장으로서 언론에 대하여 혹독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 검찰이 배임 혐의로 기소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법원행정처 근무경력이 긴 서울고등법원 이민걸 판사는 재판장으로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이석기에 대하여 제1심이 유죄로 본 내란음모의 공소사실(죄질이 가장 무거운 혐의)을 무죄로 판단하고 내란선동 등의 공소사실만을 유죄로 인정하여 형을 감경했다. 법원행정처 차장에서 대법관이 된 권순일 대법관은 대법원 제2부의 주심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이 친족 납치·살해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등의 팟케스트 방송을 하여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진보 성향 방송인 김어준, 주진우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한 하급심을 정당하다고 보아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모든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에게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는 관념은 오해일 수도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후인 2012년 5월 김능환 대법관은 대법원 제1부의 주심으로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8명의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보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패소 판결을 선고한 하급심을 파기했다. 이 판결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을 해석해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판시도 포함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며, 이에 대응한 법원 내부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으나, ‘양승태 대법원’은 대법원 제1부의 종전 결론을 번복하지는 않았고, 아직도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속 중이다.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판결이 있었고, 그 주심이 보수색을 띤 것으로 평가받는 법원행정처와 울산지방법원장 출신의 김능환 대법관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을 유발한다는 내용의 MBC PD 수첩 프로그램을 제작·보도한 PD들이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하급심 법원은 제작진을 무죄로 판단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았다고 뇌물수수로 기소되었으나, 하급심 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두 사건 모두를 무죄로 확정했다. 제1심부터 대법원까지 이 두 판결에 관여한 법관 중에는 적폐라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판사도 있고, 진보 성향이라는 대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에 소속된 판사도 있다.

법원은 국민께 매를 맞는 중이다. 매는 맞을 때 잘 맞으면 약이 된다고 믿는다. 조용히 맞는 매의 의미를 깊이 새기는 것이 공복(公僕) 된 법관의 도리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 글을 통해 모든 판사가 ‘재판거래’를 염두에 둔 ‘정치적 동물’이 아님을 알아주시라는 작은 소원을 담아 보았다.

송영승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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