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울산박물관장·고고학 박사

선사시대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상징과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과거 태화강을 무대로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천전리 암각화에 표현된 추상적인 형상들은 대부분 해독이 불가능한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반구대 암각화처럼 어떤 사물이나 장면들을 표현한 그림을 구상화라고 하고, 천전리 암각화처럼 현실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추상적인 그림을 비구상화라고 한다. 비구상화들은 구석기시대부터 무수히 표현되어 있지만 루이-윌리엄(D. Lewis-Williams)이 트랜스 이론(trance theory)을 내놓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납득할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었다.

1971년 남아프라카공화국 출신 인류학자 루이-윌리엄은 박사논문을 통해 선사시대 기호를 분석하는 트랜스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일명 부시맨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산족(San)을 대상으로 4000여 점에 이르는 바위그림을 분석했다. 그리고 흔히 기호라고 일컬어지는 비구상화들이 인간의 신경생리학(neurophysiology) 작용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고 가정했다. 1981년 <믿음과 보기(Believing and Seeing)>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신경생리학적 모델이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바위그림뿐만 아니라 구석기미술을 포함하여 모든 선사미술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루이-윌리엄의 이론을 선시시대 기호를 읽는 로제타스톤(Rosetta Stone)이라며 지지했고, 지난 수십년 동안 선사학계의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다.

▲ 천전리 암각화.

트랜스(trance 忘我)는 흔히 종교적 체험을 통해서 경험하는 초자연적인 형상을 말한다. 루이-윌리엄의 관심은 종교적 경험보다 뇌신경의 특이한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의 뇌 의식작용에 의해 무의식 상태에서 누구나 동일한 이미지를 경험하게 되고 지역과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모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이미지는 크게 광시증(entoptiques), 해석(interpretations), 표상이미지(images iconiques)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빛을 경험하는 광시증과 유사한 현상이다. 인간이 환각상태에서 의학적 질환인 광시증과 유사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격자, 넝쿨, 육각형, 평행선, 점, 밀집된 작은 점, 지그재그, 체인, 벌집, 지그재그 형태를 가진 활모양,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굴곡 등은 누구나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루이-윌리엄이 제시한 대부분의 형상들을 천전리 암각화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상목 울산박물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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