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함부로 버리지않는 것처럼
함께 향유할 깨끗한 공간 조성이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의 첫걸음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가끔 집 대문 앞을 청소한다.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쓰레기를 줍는다.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단독주택에 살다 보니 집 주변 이면도로나 공터 등 주변 환경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주로 낙엽, 나뭇가지 등이 많이 떨어져 있지만 휴지, 페트병, 비닐 봉지, 광고 전단지, 담배꽁초 등도 있다. 낙엽이나 나뭇가지 등은 어느 정도 쓸어주면 되지만 썩지 않는 것들은 깨끗이 치워주지 않으면 주변이 더러워진다.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쓰레기를 방치한 장소는 점점 심한 쓰레기 하치장으로 변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지난 8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불꽃축제가 끝난 후 여의도 한강공원 등에는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가 쌓인데 반해 이날 같은 시각 일본 수도권 쓰치우라(土浦)시에서 벌어진 일본 불꽃놀이 축제에서는 참가자들이 쓰레기를 다 치우고 돌아갔다고 한다.

실제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시골의 도로변이나 공원이나 건물 주변 골목길에도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것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환경 선진국의 면모를 보게 된다.

월요일 아침부터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가 유쾌하지 않지만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우리의 쓰레기 치우기나 환경에 대한 시민의식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여름 설악산 공룡 능선을 등반하면서 쉼터 주변에 담배꽁초들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절경의 심산유곡에 와서까지 흡연해야하는 처지는 이해되나 왜 이곳에 버리는지 답답하였다.

요즈음 반려동물, 특히 애완견을 데리고 공원이나 마을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부분 배설물을 수거해 갖고 가지만 노상에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집 앞을 쓸다가 개똥을 광고전단지로 싸서 버린 것을 가끔 발견하곤 한다. 배설물이야 비바람에 씻겨 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개똥이 묻은 빳빳한 광고전단지는 처리하기가 곤혹스럽다. 몇차례 치우다가 궁여지책으로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라고 입간판을 세웠는데 상관없이 입간판 옆에 버리고 간 것을 발견할 때면 은근히 화가 난다.

언젠가 아침 운동을 하러 동네 주택가 길을 걷다가 최근 세운 것으로 보이는 구청 청소과 명의 팻말을 보았다. ‘쓰레기 투기는 이제 그만, 쓰레기 투기는 양심을 버리는 행동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평소 빈병이나 휴지 조각들이 자주 버려져 있던 곳으로 기억되었는데 행정 당국도 오죽하였으면 팻말을 세웠을까. 이 동네는 그래도 환경이 비교적 잘 정비된 서울의 대표적인 주택지역으로 알려진 곳인데 이 정도 수준이다. 실제 동네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를 걸어가면서 노변이나 공터, 풀숲 등을 자세히 살펴 보시라, 각종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개발시대에는 국민을 계몽하는 내용이 쓰여진 각종 홍보 팻말이나 플래카드 등이 곳곳에 세워졌었다. 이제는 공중 도덕이나 환경 보전에 관한 시민의식이 높아져 그러한 것들을 설치할 필요성이나 시민들을 가르치는 행태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내세우고 계몽을 받는 데에 거부감을 표시하면서도 민주시민으로서의 덕목은 잘 지키지 않는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된다. 환경 윤리의 실천 수준이 낮은 것이다.

자신의 편익만을 앞세우고, 이웃과 공공을 생각하지 않는 행동과 사고는 올바르지 않다. 자유의 향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는 자율이어야 한다. 세상 일은 큰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서 승부가 갈린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처럼 함께 향유할 깨끗한 공간을 만드는 데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초보적이지만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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