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 파장 큰 사건 비난 높지만
일방적 주장만 들은 한계 느끼게 되면
양쪽 정보 듣고 내린 판결의 진실 알것

▲ 김주옥 울산지법 부장판사

몇 년 전 어떤 분의 강연에서 들은 내용이다. 그분은 어떤 선택을 할지 망설여지는 다섯 가지 상황에서 늘 염두에 두는 판단의 지침이 있다고 했다. 첫째, 먹을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먹지 않는다. 둘째, 살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사지 않는다. 셋째, 갈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간다. 넷째, 줄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준다. 다섯째, 말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할지 망설여지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실 어떻게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배가 대단히 고프거나 잔뜩 부른데 음식을 먹을까 말까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고, 아기 분유 사려고 들고 나온 돈으로 술을 살까 말까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묘한 순간의 선택이 한 방향으로 자꾸 누적되면 결국 삶의 질에 커다란 차이를 만들게 된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상황에서 먹지 않는 습관을 들이면 건강하게 되고,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인 상황에서 사지 않으면 부유하게 되며,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상황에서 가는 습관을 들이면 근면 성실한 사람으로 바뀌게 되고, 줄까 말까 망설여질 때 주는 사람이 되면 나 또한 그런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앞의 네 가지 상황에서 선택은 그것이 반복됨으로써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반면, 말의 경우는 단 한 번의 선택으로도 자신과 타인의 삶과 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하지 않은 말은 다음에 할 수 있지만 이미 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므로 적절한 말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해피엔드 영화에서 상황을 반전시켜 주인공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는 멋진 대사이다. 패색이 짙은 전장에서 두려움과 절망에 기죽은 병사들을 감동적인 연설로 일으켜 세워 기어이 역전승을 만들어내는 식의. 그러나 현실은 이와 같지 않다. 나의 경험과 관찰로는 오히려 멋진 말이 아니라 불필요한 말을 삼가는 것이 좋은 관계를 형성, 유지하는 더 큰 비결인 것 같다. 누구나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가 위기에 처했던 때, 그 위기를 넘었거나 넘지 못했던 때의 상황을 반추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개 말은 판단의 표출이므로 충분한 판단 과정을 거친 다음에 말해야 하고, 충분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하며 당사자가 여럿일 때는 모두의 말을 들어야 한다.

십 수년 동안 재판하면서 원고의 소장을 보았을 때 당연히 원고 승소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피고의 답변서를 본 후 달라진 경우가 무수히 많았다. ‘한쪽 말만 듣고 판결할 수 없다’는 법언을 현장에서 늘 체감해 왔다.

오늘날 사회적 파장이 큰 민사, 형사 사건은 대개 언론에서 나름의 시각에 따라 다루어진다. 심지어 저녁 메인 뉴스에 수사기관에 고발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형사 사건에 관해 피해자를 자처하는 사람을 불러내어 장시간 인터뷰를 생방송하며 상대방을 가해자로 단정하여 서슴없이 비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한쪽 말만 내보내는 보도의 내용은 공정할 수 없고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향후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회복할 수 없다.

언론 보도의 수용자는 이러한 사정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언론을 통했다 하더라도 결국 한쪽 말만 들은 처지이므로, 보도 방향에 성급히 가세하여 곧바로 다른 쪽을 욕하거나 자신의 견해와 다른 내용의 판결을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일 수 없다. 일방의 주장만 알고 있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 적어도 판결은 양쪽 당사자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들은 법관이 내린 결론이라는 사실만큼은 인식할 때, 객관적 진실을 향한 눈은 더 크게 열릴 것이라 믿는다.

김주옥 울산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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