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윤 울산무용협회 사무국장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늦게까지 노니다가 집에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래 내 것이었는데 빼앗아 간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가(處容歌)’중에서)

처용설화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 말 용(龍)의 아들인 처용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역신(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이 그의 아내를 범하려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처용은 화를 내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역신은 처용의 관용에 감동하여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며 ‘대문에 처용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붙여둔다면, 그 집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여 이후 백성들은 처용의 형상을 붙여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전해진다. (처용설화의 내용과 관련 일부 다른 의견도 있으나 여기서는 설화가 가지는 관용의 정신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이때 처용이 부른 노래와 춤이 처용가와 처용무로 계승됐다. 처용무는 동서남북과 중앙 등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흰색·파란색·검은색·붉은색·노란색의 오색 의상을 입은 5명의 남자들이 처용을 상징하는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궁중무용으로도 이어졌으며 2009년에는 우리나라 무용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도 등재되며 그 가치를 발하고 있다. 이 처용무는 올해 전국 무용제에서 울산 대표팀이 연출하면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처용은 용왕의 아들로 지금의 ‘처용암’ 자리(울산시 남구 황성동)에서 통일신라 말기 헌강왕과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는 것이 처용설화의 시작이다. 이처럼 울산은 처용의 관용과 화해의 정신이 깃든 처용설화의 기원인 도시이다. 이에 울산에서는 처용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매년 처용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처용문화제의 전신은 1967년에 울산시 승격 기념일에 맞추어 시작된 울산공업축제로 1991년 처용문화제추진위원회가 설립되면서 환경과 문화예술적 의미를 더욱 강화한 처용문화제로 명칭이 변경됐다.)

최근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고 청년실업률은 높아지고 또 자산과 직업, 소득의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사회 계층간 갈등지수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은 사회에서 분쟁과 다툼으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규모의 갈등비용을 치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인당 GDP의 27%를 갈등비용으로 지출한다고 한다. 이를 계산해보면 모든 국민이 사회갈등으로 900만원씩에 손해보는 것으로 한해 국가예산의 60%에 이르는 금액이 갈등비용으로 낭비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처용설화에 담긴 처용의 관용과 화해의 정신은 우리 사회내 갈등을 해결하고 극복하여 사회의 갈등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산인 것이다. 이처럼 처용문화제는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관용과 화해의 정신으로 이겨내기 위한 울산의 대표적인 시민축제인 것이다.

올해 제52회 처용문화제가 ‘처용! 미래를 춤추다’를 슬로건으로 11월3일부터 4일까지 달동 문화공원에서 개최된다. 지난 10월 태풍 콩레이로 비록 연기됐지만 처용문화제의 정체성을 부각하고 일반 시민과 청소년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계획돼 일정이 연기된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 수 있는 풍요로운 축제가 될 것 같다.

특히 개막식 주제공연으로 선보이는 발레극 ‘처용’은 한국 발레계의 대부 임성남 선생님(1929~2002)의 원전 작품을 재해석한 것으로 지난 1월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공연으로 선을 보여 서양의 발레와 우리의 전통을 접목한 창작물로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는 30분 분량의 하이라이트로 재연출한다고 하니 수준 높은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푸른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가을…. 올해 여름이 너무 더워서 그런지 모두가 가을을 예찬하는 것 같다. 내마음도 덩달아 살랑살랑해짐을 느낀다. 처용문화제 기간동안 울산 시민들 모두가 처용가면을 쓰고 처용무를 즐기며 가을을 마음껏 만끽해보는건 어떨까? 때론 실수하고 언짢은 일이 있어도 서로 웃으며 용서도 해주고 말이다. 울산시민의 한 명으로, 울산 무용인의 한 명으로서 제52회 처용문화제가 어느 때보다 울산 시민들 모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화합의 축제가 되길 바란다. 김소윤 울산무용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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