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계기로 자발적 헌혈자 생겨
정부도 혈액공급에 국가적 역량 다해
인도주의 몸소 실천한 헌혈자에 감사

▲ 홍두화 대한적십자사 울산혈액원장

2018년, 올해는 대한적십자사가 혈액사업을 시작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60갑자가 되어 회갑의 나이가 된 것이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합쳐서 60갑자(甲子)가 되므로 태어난 간지(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왔음 뜻하는 올해 혈액사업의 지난 생명 나눔의 발자취를 따라 가본다.

전 세계적으로도 혈액원이라는 개념의 시작은 그리 멀지 않다. 1937년 시카고 쿡카운티(Coock County) 병원에서 수혈에 필요한 혈액을 채혈, 조제, 보존하고 공급하는 기관인 혈액은행(Blood Bank)이 최초로 설치되었다. 우리나라는 6·25전쟁 후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군에서 수혈부(輸血部)로 혈액관리의 조직화가 시작되었고, 민간에서는 1954년 국립중앙혈액원의 창설로 본격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대한적십자사는 1958년 국립혈액원을 인수해 국가의 혈액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에게 ‘헌혈’은 매우 생경하고 낯선 개념이었다. 그런 탓에 의료용 혈액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혈에 의존해야만 하던 시절도 있었다. 2015년에 개봉한 하정우 주연의 ‘허삼관’이라는 영화는 매혈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원작은 위화의 중국 소설 <허삼관 매혈기>로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는 1950년대 중국의 허삼관이라는 한 가장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들이 간염에 걸려 대도시의 병원으로 가자 허삼관은 대도시로 가는 도중 병원에 들러 계속 피를 판다. 피를 뽑고 나서 충분한 휴식시간이 있어야 하지만 과도한 매혈로 생명의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위한 그의 매혈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매혈이 지극히 일반적인 통념으로 자리 잡던 1960년, 혈액에 대한 인식은 4·19혁명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당시 보건사회부 집계에 따르면 4·19혁명 하루 동안 사망 186명, 부상 316명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이처럼 많은 사상자를 수용해야 했던 서울 시내 대형 병원들은 대량 혈액을 필요로 했고 심한 출혈로 인한 빈사상태에 빠진 환자들을 위해 수많은 국민이 자발적 의사에 따라 혈액을 제공하게 된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도 헌혈을 통한 국가혈액사업 수행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시작되었다.

1970년 혈액관리법의 제정으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된 이후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에서 1974년을 ‘세계 헌혈의 해’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매혈이 아닌 오로지 헌혈로만 혈액을 확보해 의료기관에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1981년 정부로부터 국가 혈액사업 전체를 위탁 받은 이후에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안전한 혈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왔다.

60년 넘게 혈액사업을 충실히 수행해 온 결과 우리나라의 연간 헌혈자는 1960년 62명에 불과했으나 2014년과 2015년에는 30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고 2017년에는 293만여명이 헌혈에 참여하였다. 이는 전 국민의 5.7%에 해당하며 여타의 선진국보다도 높은 수치로 우리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또한 2003년 구축된 혈액정보관리시스템(BIMS)은 전국의 모든 혈액관리업무를 인터넷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발 후 꾸준한 기능 추가와 개선과정을 거쳐 2007년 2개의 특허를, 2008년에 추가로 1개의 특허를 얻어 총 3개의 특허를 보유한 세계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2005년에는 혈액정보공유시스템(BISS)를 구축해 대한적십자사 외에 헌혈사업을 하는 의료기관 등의 정보 공유가 가능하게 되어 헌혈자분들의 소중한 혈액이 가장 안전한 상태로 의료기관에 전달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과거 1950년대 후반 매혈에서 출발한 혈액사업을 헌혈로 전환하고, 수혈용 혈액을 완전 자급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은 ‘인도주의’로 대표되는 적십자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주의는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증진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적십자운동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십자 혈액사업만큼 인도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사업도 없다. 특히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도주의를 몸소 실천했던 헌혈자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숭고한 책임감으로 지난 60년간 헌혈에 참여해 주신 울산 지역 모든 헌혈자 여러분께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홍두화 대한적십자사 울산혈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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