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시민이 법정에 나가서 재판을 받아 보는 것은 그리 흔한 경험이 아니다. 대개 TV나 영화를 통하여 재판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이 직접 법정에 나아가 재판을 한 번 받아보면 실제 재판은 생각보다 훨씬 싱겁게 끝난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법정에서 이해가 상반된 사람들이 서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이를 끝까지 지켜본 법관의 최종 판단에 따라 사건 당사자들이 때로는 감동하거나 때로는 미련 없이 승복하는 모습이 그리 흔치 않는 까닭이다.

 법관은 산적한 사건 더미에서 당사자들이 서면으로 제출한 각종 서류를 검토하고 그런 후 법정에서 당사자를 만나 추가로 몇 가지를 더 물어본다. 당사자가 법정에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대개 간략하게 듣고 다음 사건의 진행을 위해 더 자세한 내용은 서면으로 제출토록 유도하며, 최종 판단을 내릴 때도 판단과정에 대하여 당사자들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의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결론만 짧게 고지하고 만다. 그리고 특히 형사 재판에 있어서는 큰 범죄일수록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대개 구속된 상태고 그러한 피고인이 무엇인가 억울한 점이 있어서 이를 재판 과정에서 제대로 밝혀보고 싶어도 몸이 구속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제출하고 싶은 자료를 모으는데도 제약이 있고 또 재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신의 구속기간도 함께 길어지는 것이 두려워 빨리 자신의 죄를 인정해 버리고 석방만을 탄원해 볼까 하는 유혹을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다소 자화자찬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누구보다도 먼저 법관 자신들이 이를 깊이 인식하고 있고 대법원에서도 작년부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민사재판과 관련, 신 민사사건 관리모델을 만들었고 올해는 다시 형사재판과 관련해 새로운 형사재판 실무 모델을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모델들이 일선 재판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되도록 온힘을 쏟고 있다. 실로 작년과 올해 법원은 좀 더 재판다운 재판을 위한 커다란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자신이 형사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형사재판 실무 모델 중 몇 가지만 잠시 소개하면, 형사 재판을 받는 피고인에게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기 위하여 나중에 형벌을 가하더라도 일단 재판 받는 도중에는 보석 등으로 피고인을 과감하게 석방해 주어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또 변호인이 없는 피고인을 위하여 국선변호제도를 확대함과 동시에 더욱 내실화하도록 하고 있다.  또 신중한 재판을 하되 범행과 형벌 사이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지 않게 심리를 단기간에 집중하여 진행하고, 그러한 재판의 결과로서 피고인이 유죄라면 피고인의 개별적 특수한 사정까지 전부 고려하되 온정주의로는 흐르지 말고 적정하고도 엄정한 형벌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엄정한 형벌을 위하여 때로는 보석으로 석방했던 피고인이라도 과감하게 다시 법정구속을 하여야 하며, 그러한 과감한 법정구속은 결국 보석 등을 통한 과감한 석방의 전제가 된다. 또 재판을 진행하는 법관은 무엇보다도 편견이나 예단을 갖지 말고 중립적인 심판자의 입장에서 피고인이 다소 상식에 어긋나거나 합리성이 모자라는 주장을 하더라도 그러한 주장을 끝까지 경청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피고인에게 인정되는 각종의 절차적인 권리를 섣불리 제한하는 것을 삼가도록 하고 있다.

 아무튼 올해 새로운 형사재판 실무 모델이 제대로 정착되면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는 다시 한번 더 선진화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대법원이 발간한 새로운 형사재판 실무 모델 책자의 머리말 맨 처음 문장에도 있듯이 한 나라의 형사절차는 곧 그 사회의 문명적 수준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형사재판 실무 모델의 정착을 통하여 국민 모두로부터 더욱 신뢰받고 더욱 사랑 받는 법원으로 거듭나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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