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오스트리아 비엔나국제공항의 풍경은 여느 공항들과는 다르다. 세계 여러 공항들이 고객의 유치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비엔나국제공항은 그 무엇 하나 특출해 보이진 않는다. 거기다 한 나라의 수도에 위치한 공항이라기에는 그 규모 또한 왜소하여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공항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비엔나국제공항에는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청사 내 벽면 전체를 도배할 정도로 가득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의 광고판이다. 특별한 과장을 더하지 않음에도 그 내용들이 다채로워 광고판 그 자체가 예술품이라 느껴질 정도다.

비엔나 시내에는 레오폴트미술관, 근대미술관 등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무제움스 콰르티어’가 있다. 빈미술사박물관, 벨베데레 궁전 등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 입구에 적혀 있는 ‘Wien hat Ku’tur’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직역하면 ‘비엔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정도가 될 터인데 대체 문화를 갖고 있지 않는 도시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다소 건방지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엔 굳이 미사여구가 필요 없는 저 자부심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오스트리아의 이러한 문화적 자부심은 역사에 기인한다. 오랜 시간 유럽의 중심지였으나 2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급속히 몰락하고, 또 중립국으로 다시 서기까지 그들에게 남은 것은 변변치 않았다. 영토는 대폭 축소되었고 인구는 900만 명이 채 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세계대전 중 공업발달의 혜택을 특별히 받지도 못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수백 년 간 쌓아올린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였다.

지난 수십 년 간 오스트리아는 훼손된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중했다. 그리고 그 해답의 하나를 인물, 곧 예술가에서 찾았다. 특히 자국 출신 예술가들에게 집중했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슈베르트, 클림트, 실레 등이다. 특히 클림트와 실레의 위상은 불과 10~20년 사이에 확연하게 달라졌다. 오스트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것이다. 예전의 오스트리아는 베토벤, 말러 등과 같은 예술가들을 먼저 생각했지만 이제는 클림트와 실레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들 입장에서 베토벤, 말러는 그 유명세를 떠나 단지 외국인이었기에 정체성과 자부심을 동시에 드높이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명료하면서도 단호한 전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흔적은 비엔나 시내에 산재해 있는 미술관, 박물관들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울산의 문화 정체성은 무엇이며, 또 어디에서 자부심을 느껴야 할까? 문화는 사람에게서 태동한다. 오로지 사람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유일한 해답이다. 울산의 문화는 울산의 인물에서 찾아야 한다. 역사 속 인물에서 뿌리를 찾고 그를 바탕으로 울산의 인물을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엔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울산의 역사와 문화를 가감 없이 기록한 명백한 증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가들의 손을 빌려 정체성을 그리고 또 그들의 눈을 통해 자부심을 본다. 예술가들이 없이 어찌 정체성을 찾으며 자부심을 느낀단 말인가? 예술가들이 곧 울산 문화의 정체성이요, 자부심인 이유이다.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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