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미란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올 초, 미투(me too) 운동으로 인해 우리 사회 내에 만연해 있던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성희롱 담론은 사람들에게 크게 한 발짝 다가섰다. 일상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성희롱 문제를 얘기하고, 혹시나 본인의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점검하는 사람들도 이전보다 많아진 느낌이다.

물론 건강한 변화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논의가 사회 분열요소로 치부되거나 펜스 룰과 같은 부정적인 논란도 있어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올 한해 우리 사회가 그렇게 뜨거웠을 때에도, 울산은 그러한 분위기를 비껴가는 듯 했다는 점이다. 그러던 중, 올 한해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이 시점에서 연이어 일어난 여성긴급전화 1366 울산센터의 사건이나, 이른바 스쿨 미투는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혹자는 성폭력사건도 아니고, 성희롱 정도로 유난스럽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래서 더 소중하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 내에서 성희롱이란 일반적으로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성적 행위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성적인 표현들, 그렇기에 반드시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용인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크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성희롱은 말 그대로 실없이 놀리거나 사소한 성적 농담쯤으로 치부되는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소하게 여기면서 정작 당한 피해자에게는 공론화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미투가 올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그 순간에도 얼음장 같았던 울산지역 내에서, 심지어 피해자에게는 전혀 사소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제삼자가 나서 사소한 일로 치부해 버리는 분위기 속에서, 그래서 더 고민되고 주저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용기 있는 행동을 선택했다는 점이 어떻게 대단하지 않을 수 있고, 소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사실 ‘성희롱’이라는 용어는 서구에서 형성된 ‘sexual harassment’를 번역한 것으로 본래의 용어가 갖고 있는 권력관계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차별이나 폭력성 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여, 좀 더 성희롱의 성질 및 중대성을 담을 수 있는 용어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성희롱이 갖는 이미지가 지금처럼 사소한 성적 농담쯤으로 여겨져도 나쁘지 않고, 오히려 성적 농담이 아니더라도 여성이나 남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언동 역시도 성희롱이라고 보는 편이 오히려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대신에 그러한 사소한 농담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때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상대방이 원할 때에는 반드시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타인이 느끼는 불쾌감에 대해 왜 제삼자가 사소함을 논하는가. 왜 사소하다고 하면서 쉽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가. 심지어는 왜 조직 내 분위기를 위해서 피해자가 느낀 불쾌감을 말해서는 안 되는가.

편견이나 차별을 담은 말을 쉽게 내뱉지 않을 것, 상대의 언동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꼈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사과를 요청할 수 있을 것, 상대방 역시도 본인의 과오를 인정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수 있을 것, 우리 지역사회에 이러한 분위기가 정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배미란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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