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종수 울산 개인택시기사

왕(王)이라고 하면 옛날 왕조시대에 나라의 임금을 뜻하는 말이다. 현대에 와서 이 말은 어떤 분야에 최고의 권위가 있고 으뜸되는 인물을 호칭할 때 쓰이기도 한다. ‘소비자가 왕이다’라는 말을 누가 만들어 붙인 말인지 잘모르겠지만 소비자 스스로 나는 왕이로소이다 하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상거래상 판매자가 손님을 친절하고 정중하게 모시고자 하는 판매전략으로 소비자한테 붙인 이름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때로는 왕이라는 이름이 갑질을 상징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갑질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소비자의 갑질, 공급자의 갑질, 대기업의 갑질 등 갑과 을의 관계에서 누가 유리한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갑이 되고 을이 될 수 있다. 소비자의 갑질(black consumer) 행위가 사회적인 공분을 쌓는가 하면 대기업의 갑질과 불공정 행위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왕 자가 붙는 대상이라면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닌 듯싶다.

특히 대기업이 갑질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몇 가지 성립 요건이 있다. 첫째, 공급하는 품목이 독과점적인 지위에 있을 때, 둘째, 자기 이익추구에만 몰두해 있을 때, 셋째, 소비자를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 공급방식일 때 발생할 수 있다. 한 예로, 필자가 2017년도 2월 신형 영업용 중형택시 한 대를 주문했다. 주문하기 전에 미리 SNS를 통해 자가용 론칭(lanching)모델만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 특이한 사항은 스마트기능(자동제동제어장치)에 관심이 컸다. 그런데 막상 택시차종이 좀 늦게 출시되고 나서 확인해 보니 택시에는 스마트기능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음악을 좋아해서 고급사양의 오디오를 원했는데 이것도 하품의 기본사양 뿐이었다. 그리고 좌우 깜빡이등도 자가용처럼 LED등이 아니고 일반 황색 깜빡이등이었다. 한마디로 영업용 택시에는 옵션 권한도 없고 제조사가 만들어 준 대로 무조건 타시오 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행태들은 영세한 택시업계(소비자)를 업신여긴 처사로 볼 수밖에 없다.

택시업계도 하나의 소비주체로서 진짜 왕으로 모셔야 마땅하나 때로는 제조사의 갑질 횡포가 자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또 신차를 개발할 때는 항상 수리가 용이하고 적은 비용으로 수리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제조사의 생산성만 내세워 부품 모듈화(module)한 것이 소비자한테는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부품을 교환하는데 주위 관련부품 모두를 통째로 교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조향장치의 핸들 랙(leg)에 기어를 감싸고 있는 고무가 찢어지면 고가의 랙을 통째로 교환해야한다. 그런데 그 랙은 결국 재생공장에서 고무만 갈아 끼워 다시 재생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범퍼 앞에 몰딩이나 깜빡이등 케이스를 교환하려면 전에는 범퍼를 그대로 두고 밖에서 작업이 간단히 이뤄졌으나 요즘은 모듈화 됨으로서 범퍼 자체를 전부 탈부착해야 교환할 수 있다. 부품 값보다 작업 인건비가 몇 배나 더 비싸게 지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모듈화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생산성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과정에서 제조사의 유리한 조건만 채택하고 소비자한테는 불리하고 손해만 감당해야하는 진짜 불공정한 제조법이라 하겠다. 그리고 소비자가 제조사의 홈페이지에 접근해서 제품 정보를 얻고 사용후 문제점들을 어필하고 싶어도 접근 자체를 막아놓았다. 다시 말해 우리제품에 대해 일체의 시비를 걸지 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소비자의 입을 철저히 막아놓은 것이라 하겠다.

옛날 애플사의 스티브잡스가 애플4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우리 회사의 일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소개했다가 소비자들한테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그것은 손에 들고 통화를 하면 감도가 떨어진다는 소비자의 컴플레인을 받은 것이다. 처음에는 일축했다가 결국은 승복해서 다시 제품을 개선한 일화가 있다. 제조사는 생산제품의 최종 검사자는 소비자라는 인식이 아주 중요하다. 제조사의 입맛에만 취해있으면 소비자의 구미(口味)는 알 수 없다. 모든 신기술은 소비자들로부터 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소비자의 불만과 애로사항을 잘 청취하고 수렴할 때 고객들로부터 호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고 또 사랑받는 기업이 될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소비자가 왕’이 아니라 ‘소비자가 봉’이라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변종수 울산 개인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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