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장식하는 가장 큰 비보는 역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다.

 교통사고로, 때로는 물놀이로, 강도 등에 의해 타의에 의해 갈 때 우리는 운명의 사건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빚 때문에, 자식에 대한 비관, 생활고, 성적, 실연, 질병 때문에 슬픔과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현실이 갈수록 우리를 다른 형태로 묘한 충동을 일으키고 있다.

 생활의 다른 대안처럼 퍼져가는 이러한 현상이 두렵기까지 하다. 자고 나면 슬픈 소식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면서 생활 무기력증 증세까지 생기고 있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깊은 분노가 생기는 일종의 스트레스 증상이다.

 그러면 적극적인 사고도 사라지고 창조적인 힘도 낮아진다. 우울해지는 것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가 생겨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 스트레스를 준다.

 요즈음 택시를 타면 기사분들의 분노가 전달되어 하차하고 나면 한참 마음을 추슬러야 할 정도이다.

 인간에겐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삶과 죽음은 생각하기에 따라 종이 한 장 차이처럼 오갈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의 의지가 작용한다.

 정몽헌 회장의 자살을 들으며 깊은 슬픔과 분노가 밀려온다. 누군가 옆에 있어주어 고독하고 절망적인 그 순간에 그의 고통을 내맡길 수 있었다면, 자살은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24시간 보살펴줄 시스템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법과 제도를 초월하여 일을 할 때는 정말 스트레스가 강하기 마련이다. 제도권내에서 현실만을 진단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비상하는 새들의 뜻을 알지 못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새장에 가두려 하기 때문에 고독과 구속감이 매우 심하다. 그에 따른 모험과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심리학의 인지부조화 이론에 의한다면, 현실과 자신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언행일치가 되지 않을 때, 정서와 인지가 다른 행동을 해야 할 때, 애매모호한 상황에 이를 때 우리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괴로운 상황이 되어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강해지면 견딜 수 있을 때는 삶의 본능이 작용하지만 더 이상의 위기를 견디지 못하면 당연히 죽음의 본능이 손짓하기 마련이다.

 가장 고독한 순간이기도 하다. 피안의 세계는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으로 선택 가능한 파라다이스이기도 한 것이다. 순간의 결정이 이렇듯 남겨져 있는 우리들에겐 충격이며, 또 다른 고뇌를 가져다준다.

 제도권 내에서 견디지 못하는 최근의 자살들을 보면서, 이제는 건강한 정신과 의지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국가가 만들어주거나 개인들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어려울 때 하소연하는 상담소나 정신과를 부끄럼 없이 이용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하트라인 전화도 있다. 아니면 신앙도 가져보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할수 있는 운동도 하고 등산도 하고, 모임도 열심히 가 보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가치를 겸손되게 받아들이고, 고통의 순간들을 나누는 시스템에 등록해 놓는 것이다.

 모든 제도에 관여되는 이들은 국민들을 이제 그만 피곤하게 했으면 한다. 자신들의 행보가 국민에게 미쳐질 것을 고려한 성숙한 결정과 행동을 하는 철학부재상황이 우리를 점점 미치게 한다. 우리를 자살의 유혹시대로 몰아가는 이러한 상황을 지도자들은 인식하고 대처를 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한번쯤 에릭프롬의 "건전한 사회", "사랑의 기술"을 이 자살시대에 읽어 보기를 권한다.

 생산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생산적인 조직 사회를 통해 삶의 본능이 살아나는 시대를 만드는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즐겁게 살아야 할 희망과 원칙이, 좋은 아침에 만나지는 그러한 일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는 그런 언론과 사람, 제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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