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중앙여고 교사

대학 시절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계절학기 수업이 있었다. 조기 졸업을 목표로 하던 공붓벌레들이 주로 들었다. 나같이 평범한 학생과는 무관한 수업이었다. 그런 계절학기가 이번 겨울방학부터 고등학생들도 신청할 수 있다. 고등학생이 계절학기 수업이라니. 그것도 온라인으로.

최근 2~3년간 고등학교는 많이 달라졌다. 특히 교육과정 운영에서 무학년제 소인수교육과정, 거점형 공동교육과정이 파이팅 넘치게 운영되고 있다. 학교에서 개설이 힘든 소수 희망 과목에 대해서 수업을 개설하고 희망 학생에 한해 한 과목을 더 듣는 방식이다. 2015년 교육과정 업무를 맡았을 때 우리 학교는 전공미술실기 단 1개의 수업을 했었다. 이제는 거점형 교육과정 4과목인 프로그래밍, 생명과학실험, 심리학, 시나리오와 소인수교육과정 2과목인 보건, 물리실험 총 6개의 과목을 운영하고 있다.(이런 많은 추가 과목 운영으로 인해 교사의 업무가 많아졌다. 하지만 공교육 콘텐츠가 풍부해졌다는 점에서 교사의 고충보다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거점형 수업을 들었던 학생의 대학 진학 성적이 더 좋다는 일선 학교 선생님의 증언도 많다.)

이번 겨울방학은 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에서 ‘온라인공동교육과정 계절학기’를 실시한다. 여행지리, 실용경제, 사무관리, 생명과학실험, 고급수학Ⅰ, 한문Ⅱ 총 6개의 과목으로 학교에서 개설이 어려운 소수 심화 과목들이다. 1월부터 진행될 수업은 ‘교실온닷’이라는 포털을 통해 수강신청과 수업이 진행된다. 외국어교육원에 구축한 스튜디오에서 전자교탁, 실물화상기, 화자추적카메라 등 교수학습지원기기를 이용해 온라인 쌍방향 수업이 진행될 것이다.

11월 공문을 통해 강사 모집 공고가 떴을 때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새로운 수업을 새롭게 해 볼 기회. 여태껏 교육과정에는 있으나 한 번도 개설된 적이 없었던 과목 중 하나인 한문Ⅱ를 수업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10명 이내의 인원으로 쌍방향 화상으로 진행하는 수업이기에 평소 많은 인원의 교실에서 하지 못한 토의, 토론 수업 등 다양한 수업이 혹은 내가 꿈꾸는 수업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나는 제자백가의 글을 한문으로 읽고 이를 당시 맥락에 맞게 이해하기 위한 토론 수업을 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동양 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혹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주고 싶다. 학교 수업에서는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 한문 교과의 정수(精髓)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 너무 거창한 수업에 대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준말) 시대에 한문Ⅱ를 신청하는 학생이 있을까. 하지만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으며 고전 텍스트를 한문으로 읽고 싶다고 느꼈다는 학생의 신청서는 어딘가에 있는 보석을 발견한 것만 같아 훈훈하기만 하다. 교사로서 우리가 할 일은 이런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가끔 누군가 툭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 아침 조례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계절학기 수업 한번 들어볼래?”라고 툭 던져볼 참이다.

양수진 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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