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장기파업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물론 현대자동차 당사자 일 것이다. 생산차질 대수가 10만대를 넘었다고 하니 그 피해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바로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몸담고 있는 중소 협력업체다. 천재지변이 아닌 인위적인 이유로, 그것도 남의 집안싸움으로 아무 잘못도 없는 중소기업이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하는 이같은 일이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더욱이 한두번도 아닌, 해마다 최소한 한달 이상은 멀쩡한 공장을 세워둬야 하니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현대차에 부품공급을 하는 사장들이 모이면 "이 시대의 가장 큰 죄인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사장과 종업원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마다 물질적·정신적 고통을 겪는 일을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라는 자조섞인 얘기를 종종한다.

 사실 독자적인 브랜드를 갖고 있지 않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거래를 트는 것을 큰 자랑으로 생각해 왔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꼭 돈이 된다는 뜻만이 아니다.

 제조업을 하는 입장에서 공장을 쌩쌩 돌린다는 것은 기업의 존재이유이고, 최대의 바람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처럼 또다시 모기업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본의 아니게 공장을 세워야 할 때는 말할 수 없는 비참함과 처절함이 엄습해온다. 만기가 돼 돌아오는 어음결제부터 우리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또다른 기업의 부도 염려까지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실제로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쓰러지는 기업들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는 "부도공포증’은 기업운영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여기에다 모기업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임금과 복지혜택을 덜 받은 우리 직원들을 생각하면 "저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언제까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라는 자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게 된다.

 특히, 일손을 놓고 조기퇴근을 하는 직원들의 축 늘어진 어깨를 볼 때면 마치 내가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 사람들도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고,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데".

 이와 함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우리 같은 협력업체의 존재이유를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해마다 모기업의 대형파업으로 수많은 협력업체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을 보면서 이같은 생각을 안 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현대차가 GT-5, 즉 세계 5대 자동차메이커 진입을 목표로 할만큼 성장을 한 데는 우수한 현대 임직원들의 노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 뒤에는 우리 같은 중소 협력업체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지상에 우뚝 자란 큰 나무 밑에는 많은 잔뿌리들이 튼튼한 뒷받침을 하고 있듯이 말이다.

 다시 말해 오늘의 현대자동차는 현대 임직원들만 키운 회사가 아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마치 파업중독증에 걸린 듯이 때만 되면 파업을 감행해 당사자는 물론, 죄 없는 협력업체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기는 것은 정말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이번 파업도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파업이 끝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제발 앞으로는 수많은 협력업체가 "파업공포증’에 떨지 않도록 현자 노사가 항구적인 평화협정이라도 맺어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모기업의 파업으로 속골병이 드는 중소업체들을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좋은 품질의 부품을 적기에 공급하며 모기업과 세계 일류의 기업으로 발전하고 싶은 것은 필자만의 바람이 아니다. 비록 일하는 곳과 회사명은 다르지만 우리 협력업체 임직원도 현대자동차와 한가족이다. 또 그런 대접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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