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울산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 일원 전경.

대곡박물관 10주년 기념
‘대곡천 문화사…’ 발간
총 4곳의 사찰·절터 소개
암각화 성지로만 알려진
대곡천에 대한 시각 넓혀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울산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 일원에서 최근 통일신라시대 건축물 유구가 확인(본보 2018년12월20일자 보도)됐다.

건축물의 정확한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그 곳에서 나온 유구가 대곡천의 또다른 절터에서 발견된 기와 및 수막새와 흡사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사찰이 해당 부지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때마침 대곡박물관(관장 신형석)이 개관 10주년(2019)을 기념하는 <대곡천 문화사와 대곡박물관>을 펴내면서 대곡천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사찰(절터)들의 흔적을 알려주고 있다.

▲ 대곡천 문화사와 대곡박물관

책 속 ‘대곡천 유역 절터’에는 총 4개의 사찰명과 절터가 소개된다.

첫번째 백련사지(白蓮寺址)는 대곡댐 발굴조사 당시에는 이름을 확인하지 못해 지명을 붙여 ‘방리 사지’라고 불렸다. 현재는 대곡댐에 수몰된 상태다. 이 절터에서는 건물지(建物址) 6동을 포함해 모두 19기의 유구가 조사됐다. 사찰건립시기는 약 8세기 전반으로 보고 있으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중기까지 존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 이름이 백련사로 밝혀질 수 있었던 건 인근 백련정을 지은 도와 최남복이 백련산수기에서 백련사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련정은 적취대(滴翠臺)의 앞쪽 땅 끝 쪽에 남향으로 세웠다. 그 오른쪽 곁에는 백련사(白蓮寺)옛터가 있었는데, 그래서 정자의 이름을 ‘백련’이라 했다는 것이다.

두번째 장천사는 지금의 대곡박물관 옆에 있던 사찰이다. 장천사지는 1999년 시굴조사가, 2000년 발굴조사가 진행됐고 현재 대곡댐으로 통행하는 도로로 일부 사용되고 있다.사찰 이름을 두고 문헌에서는 ‘障川’(장천)이라 했지만 출토 기와에서는 ‘長川’으로 표기됐다. 유물로는 ‘강희 41년(康熙四十一年) 장천사 법당조성(長川寺 法堂造成)’명 암막새 등이 출토됐다. 보물 제1733호로 지정된 부산 국청사 청동북도 1666년(현종 7) 장천사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세번째 천전리사지(川前里寺址)는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각석(川前里刻石) 건너편 계단식 논에 있는 폐사지다. ‘탑등(塔嶝)’으로 불렸고, 지금도 석탑의 부재가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이 곳을 원효대사가 머물며 저술활동을 했다는 반고사(磻高寺)지로 비정하기도 한다. 다만, 이를 증명할 확실한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 대곡천 백련사지서 출토된 여러 문양 기와.

그렇다면 반고사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또다른 일각에서는 반고사지를 지금의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 200-1 일원, 반구대(盤龜臺) 기슭으로 비정하고 있다. 반구대가 있는 산의 형상은 거북이 머리를 내밀고 엎드려 있는 모습인데, 이 곳에서 석조불상 1구와 탑신(塔身)이 나왔었다. 1965년 사연댐이 건설되면서 두 유구는 부산대박물관으로 옮겨져 지금도 그 곳 야외마당에 놓여져 있다. 이 절터는 행정구역 명칭을 붙여 ‘대곡리사지’라 불리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곳을 반고사지로 보는 견해가 무게를 얻고 있다. 이는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울산읍지>(1934)와 <흥려승람>(1937) 불우(佛宇)조에는 “반고사는 반구산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라고 돼 있다. 반고사가 언제 폐사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이 절터에 반고서원(반구서원)이 건립됐다.

한편 108쪽 분량의 <대곡천 문화사와 대곡박물관>은 △대곡천 유역 절터 뿐만 아니라 △대곡천 유역을 주목하며 △대곡댐 편입부지 유적 △대곡천 유역의 정자 △반구대(포은대) △반고서원(반구서원) △대곡천 유역 암각화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곡천 유역의 문화사(史)를 한 권으로 알기 쉽게 정리해 대곡천을 ‘암각화의 성지’로만 인식하는 관광객의 시각을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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