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어제는 오랜만에 밤이 늦도록 음악을 들었다. 먼지 쌓인 음반들은 그보다 더 뽀얗게 먼지 쌓인 내 기억들을 끄집어 내 놓았다. 세상에나, 까만색 카세트 라디오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는 고등학생 남자아이가 저기 있다. 그 예민했던 밤들…. 조금 슬프면서도 행복한 밤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대책 없이 한참이나 가버려서, 어느덧 중년이 된 내가 베란다 창에 우두커니 비추어졌다. 또, 어김없이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밝은 지도 몇 날이 흘렀다. 그러며, 그래도 새해는 늘 특별하니까, 슬쩍 약하게 다짐들을 주섬주섬 해본다. 나를 위해, 가족들을 위해 운동하기, 늘 바른 생각으로 정의롭게 살기, 책 좀 읽기,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기….

살다 보면 후회는 늦고 다짐은 늘 앞선다. 무너지기 전에 그렇게 했으면 좋으련만 꼭 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했을 걸’ 후회하게 된다. 그렇다. 마음이 있을 땐 용기가 없고 용기가 생길 땐 상대는 이미 떠나고 없다는 것을. 예전에 한 작가의 산문집에서 국악과를 나왔으나 남들처럼 국악관현악단에 들어가거나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홍대 앞 클럽에서 가야금 하나 달랑 들고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 이름도 생소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민요나 판소리가 아닌 대중가요. 낮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밤에는 노래를 부른다는 그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그녀의 삶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다, 우리의 두려움은 타인이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작가의 위로와 응원의 웅얼거림이 콕, 와 닿았다.

올 한 해는 늘 그렇지만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앞선다. 지난 한해 내가 했던 행동들과 말들이 학생들에게, 가족들에게, 남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위로와 응원. 서로에게 괜찮다며 아무 일도 아니라며 툭툭 털고 다시 일어 날 수 있다며 손을 내밀어 주는, 넌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끝까지 봐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어른이 되어 주길 나에게 다짐한다. 나에게도 나의 뒷모습을 끝까지 봐 주는 그 누군가가 있고, 누군가로부터 ‘꽤 괜찮은 사람이군’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길 다짐한다.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 그 말 한 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 유리벽에 쓰여 있던, 아주 오래 눈길이 머물렀던 문무학 시인의 ‘바다’라는 시다. ‘받아’가 ‘바다’가 되고, 어머닌 모든 걸 다 받아 주는 바다가 되고. 내가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묵묵히, 여전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시는 늙으신 어머니가 그저 고맙고 눈물겹기만 한다. 얼마나 더 살아야지 바다 같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새해의 다짐들이 꾹꾹, 다져져서 빛바래지 않게 되길. 부디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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