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화 울산쇠부리축제추진위원회 사무국장

개관 8주년이 된 울산박물관 입구에는 우측에 선사문화의 상징인 반구대 암각화의 암각문양이 새겨져 있고, 좌측에는 금속메스로 마감된 커다란 창이 인상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좌측편의 금속메스는 철기문화의 상징인 달천철장의 기원과 맞닿아 울산의 산업문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달천철장을 향하고 있다. 아직도 가끔 “쇠부리가 뭐꼬?”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러한 반응을 접할 때마다 겉으론 ‘그럴 수도 있지’라며 겸연쩍게 웃어넘기지만, 속은 쓰린 것이 현실이다. ‘아직 멀었구나’라는 독백을 삼키면서 말이다.

‘쇠부리’란 전통제철산업을 지칭하는 순우리말로 넓은 의미로는 ‘제련 및 제련에서 생산된 잡쇠덩이를 다시 정련하고, 단야나 용해과정을 거쳐 철기를 제철하는 모든 공정’을 뜻하며, 좁은 의미로는 ‘원광을 제련로에서 녹여 잡쇠덩이를 생산하는 제련공정’에 한정된다. 쉽게 말하면 철광석을 숯과 함께 용광로에 넣어서 좋은 쇠를 생산하는 것을 ‘쇠부리’라 하는 것이다. 그럼 울산쇠부리는 무엇인가. 조선후기 달천철장의 토철을 원료로 토둑 또는 석축형태의 제련로에서 쇠를 생산하던 제철법을 뜻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철을 채광한 달천철장(시지정기념물 40호), 조선후기 달천철장을 재발견하고 무쇠제조법을 발명한 구충당 이의립과 독창적인 제철법인 울산쇠부리, 고된 노동을 달래던 불매꾼들의 노래인 울산쇠부리소리, 그리고 울산의 근·현대 산업문화를 아우르는 것이 쇠부리문화라 할 것이다.

북구문화원은 2016년부터 명맥이 끊어진 울산쇠부리 제철기술을 복원하기 위해 제철분야 학자, 장인, 지역민들로 구성된 거버넌스인 ‘울산쇠부리복원사업단’을 발족해 ‘울산쇠부리 제철기술 복원실험’을 네차례에 걸쳐 실시했고 지난해 국내 최초로 선철을 생산하는 등 복원에 근접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연희돼 온 울산쇠부리소리 역시 지역민들로 구성된 ‘울산쇠부리소리보존회’에 의해 시 무형문화재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올해로 열다섯번째를 맞이하는 울산쇠부리축제는 대표적인 철문화축제로써 ‘타악 페스타-두드樂’과 같은 새로운 콘텐츠로 울산의 철문화를 알리고, 시민이 참여하는 참여형 축제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더불어 대안동쇠부리터 발굴조사와 달천철장을 중심으로 한 울산쇠부리문화의 중장기발전계획에 관한 용역도 진행중에 있다. 그럼에도 고대부터 이어져온, 어쩌면 울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에 가장 부합하는 울산의 철문화인 쇠부리문화를 우리는 제대로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을까? 의문이다. 문화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삶의 방식,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소통하고 공유하는 행동 방식이다.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즐기고, 나누는 그 속에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쇠부리문화를 바라기엔 부족함이 많다는 것이다. 저녁 무렵 달천철장에서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는 주민들이 과연 이곳이 울산쇠부리문화의 중심지였으며, 2002년 폐광되기 전까지 이천년간 철광석을 생산한 철산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모를 일이다.

얼마 전, 달천철장과 관련해 폐탄광 시설을 이용한 국내 문화시설을 답사했다. 이전 답사와의 차별성은 기초자치단체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구청장과 구의장이 동행했다는 점이다. 답사의 여정마다 참석자들은 한마디라도 더 담아 듣고자 귀를 열었고, 두발은 길을 제촉했으며, 손으로는 분주히 휴대폰을 눌렀다. 짐작컨데 너무 늦어버린 울산쇠부리문화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두고 온 달천철장의 빈곤함 때문이었으리라. 돌아오는 차안, 답사의 소회를 밝히는 자리에서 여독의 피곤함도 있었겠으나, 당면한 현실의 무게 때문인지 차분한 어조가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마치 종이에 꼭꼭 눌러쓰듯 의지 가득한 견해들이 쏟아졌고, 답사를 기획한 담당자는 머리와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말처럼 이제라도 흙에 묻혀서 잊혀질 뻔했던 울산쇠부리문화를 민과 관이 소통해 치밀한 계획과 과감한 실행력으로 시민과 외지 관람객들이 함께 참여하고, 즐기고, 나누는 오늘의 문화로 다시 설 수 있기를 바래본다. ‘아하! 쇠부리!’를 바래본다.

정재화 울산쇠부리축제추진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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