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영화를 보다가 그가 울고 있다. 그도 울면서 힐끗 그들을 보고 있다. 그가 그들인지 그 옆의 그가 우는 것인지 잘 가늠되지 않는다. 상영 중인 영상 어디쯤 슬픔이 스며들었을까. 급기야 그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낀다.’(증식, 권주열)

감정은 개념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꽃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꽃에 대한 감정도 없다. 우리는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대부분의 개념을 공유한다. 그러므로 생겨나는 감정 또한 보편적이다. 이것이 ‘공감’(共感, empathy)의 토대다.

아파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순간 나의 뇌는 타인의 상황을 나의 상황으로 시뮬레이션한다. 공감활성의 불가항력적 메카니즘이다. 이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고 타인과 소통한다. 이는 생존을 향한 진화적 산물이며 생존의 필수 전략이기도 하다. 공감을 통한 상호작용이 없으면 우리의 뇌는 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데이비드 이글먼, The Brain)

전 세계의 폭력사건을 보면 어디서나 동일한 행동특징들이 발견된다. 폭력행사를 통한 성취감과 자만심, 폭력행위의 집단감염(폭력유행), 외집단에 대한 공감반응의 결여, 신경외과 의사 이차크 프리드(itzhak Fried)는 이와 같은 특징적인 행동들을 ‘E 증후군’으로 명명했다. ‘E 증후군’의 핵심 특징은 외부집단에 대한 공감반응의 결여다. 그 결과 집단폭행과 같은 인간행동의 가장 어두운 측면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공감반응이 결여되는 것일까. 공감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선전이다. 선전은 성원과 비성원사이의 차이를 확대하여 확실한 경계를 지각하도록 만든다. 외부집단에 대한 지속적 비인간화의 선전, 뇌는 결국 자신의 회로를 재구성한다. ‘비인간화의 신경학적 조작이 완성되는 순간 인간에게 적용되는 도덕 규칙들이 외부집단의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Lasana Harris) 최근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성인들의 무력한 개인을 향한 집단폭행 사건은 이의 단적인 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관점의 전환이다. 관점이 바뀌면 새로운 인지경로가 열리고 뇌의 공감영역이 활성화 된다. 비인간화의 경로를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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