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위험하다. IMF의 혼란, 월드컵의 희망을 뒤로 한 채, 이제 우리 사회는 극심한 사건사고의 혼동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한 기업인의 극단적 행위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사건사고가 너무 많다. 실직한 가장은 절망 끝에 자살하고, 기업주는 자금난에 자살한다. 청소년들은 성적이 떨어져 자살하고, 주부들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한다.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자살비용을 마련하려고 강도 짓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도까지 접한다. 대구에서는 지하철 방화사건의 악몽이 남아있는 가운데 또 기차 추돌사건이 발생하였다. 아침마다 조간신문을 펼치기가 두려운 세상이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사건사고의 공화국이 되고 있다. 문제는 현재 발생하는 사건사고들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거나, 우발적인 차원을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절망과 죽음을 넘어서, "사회의 좌절과 해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의 좌절과 해체의 징후는 어디에 있는가? 우선 사회의 절대적인 구성단위인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독신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혼율은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들은 자녀생산을 절제하고 있으며, 결손 및 대화단절의 형태가 많다. 가장 안정되어있어야 할 가족제도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것은 처음이다.

 사회해체의 두번째 징후는 경제, 정치, 교육, 종교 등 사회제도가 건강하지 못하고, 대화불능의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각 지역 및 계층 간에 정상적인 대화통로가 없다.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 든다. 각 집단들은 폐쇄된 그들만의 의사결정 방식으로서 의사를 결정하고 난 뒤에는 정부를 비롯한 타 집단에 대하여 최후통첩을 던진다. 상대가 수용하지 않으면 가차없는 무력행사로 들어간다. 이러한 막무가내 시스템 속에서 사회적 약자나, 심지어 정부의 갈등해결 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는 공간은 아예 없다.

 사회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건강한 경제윤리가 없는 것도 사회해체의 징후이다. 기업에서는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구직자들은 들어갈 직장이 없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이 사회에서, 경영자는 주어야 될 임금의 2배를 노동자들에게 주고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기업주의 양보를 더 요구하고 있다. "돈이 양반’이라는 생각은 이 사회에서 절대불변의 진리로 간주되고 있으나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떤 곳에, 어떻게 사용해야 될 것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방식은 저질의 극을 달리고 있다.

 영화보다도 끔직한 현실을 매일마다 접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절단해야 한다. 현 정부는 벌써부터 사회구조의 틀을 바꾸는 "새로운 (정치)문화’의 철학과 비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국민들은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과거는 낡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대안과 비전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정부에 기대해서는 아니된다. 그것은 노무현 정부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의 문제이다. 과거 권위주의 국가 시절에는 정부가 모든 것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기술변화는 너무 극심하고, 사회는 매우 거대하다. 그리고 대중의 가치는 너무나 다양하다.

 이러한 시대에 보다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건강한 생각을 가진 시민(사회)이어야 한다. 자살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을 두고 지식인들은, 예견된 자살을 "우리 모두"가 방조했다고 지적하였다. 옳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제 사회해체의 징후가 곳곳에서 보이는 지금 이에 대하여 외면한다면 그것 또한 책임방조이며, 시대에 대한 직무유기이다.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느껴지는 계절에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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