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행정이 결국 큰 화를 불렀다. 한창 설 대목 특수를 누려야 할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수산물종합동이 지난 24일 새벽 전소했다. 새벽시간대라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대목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낮시간이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전논의만 10년째 거듭하고 있는 소극적 행정을 탓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울산농수산물도매시장은 벌써 2009년, 2016년 두차례 화재가 있었다. 특히 2016년에도 추석대목을 앞둔 시점에 종합식품동에서 불이 났다. 그때도 대형 인명피해의 아찔함에 놀란 가슴을 쓸어야 했다. 원인은 전기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장은 29년 전인 1990년 3월에 지어졌다. 시설 노후화를 중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시장은 전기용품의 사용이 많은 곳이다. 특히 수산물을 취급하는 곳은 항상 물에 젖어 있기 때문에 화재 위험이 유난히 높다. 노후된 시설은 그 자체만으로 화약고나 다름없다.

울산농수산물도매시장의 현대화는 도·소매상인은 물론 시민 모두의 바람이다. 시설노후화로 인한 안전위험과 공간협소가 중요한 이유다. 모두가 다 아는 이유를 두고도 재건축이냐 이전이냐 10년째 논란만 거듭하고 있다. 그것도 1개 법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이전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4년전에는 용역을 마치고 국비신청을 했으나 ‘구성원 만장일치의 합의가 전제조건’이라는 이유로 탈락되기도 했다. 용역비는 물론 행정력 낭비에 신뢰상실까지,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많은 인명피해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을 뻔히 보고도 탈락 결정을 내린 농림축산식품부도 이해하기 어렵다.

현 위치에 재건축을 하려면 사들일 수 있는 주변부지를 모두 사들여도 5만5000㎡ 밖에 안 된다. 이는 전국 농수산물도매시장 평균 규모의 절반에 불과하다. 현 위치가 번화가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재건축 후 머잖아 또다시 이전논의를 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재건축 비용도 울산시가 감당하기 어렵다. 현 부지를 매각하고 외곽으로 이전하지 않고는 달리 도리가 없음이다. 당연한 길을 두고도 정치적 이유 때문에 못하고 있다는 세간의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울산시는 지난 8월 농수산물도매시장 시설현대화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한데 이어 송철호 시장은 지난해 12월 시의회에서 “2020년 상반기 국비 공모사업 신청을 목표로 농수산물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록 많은 소를 잃었지만, 더 많은 소를 잃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엄청난 사고의 예고편일 수 있다. 울산시의 적극적인 노력과 정부의 발빠른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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