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과

입춘이 지난지도 벌써 열흘째다. 절기는 속일 수 없음인가, 증가된 태양빛의 자연방출은 마침내 대지의 수맥을 열었다. 수맥이 열리(開)면 생명이 열리는 법, 겨울을 견뎌낸 나목(裸木)들의 물관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흔들릴 때마다 부풀어 올랐던 마른가지들도 어느덧 봉오리를 맺었다. 매화는 이미 봉오리를 터뜨렸고 양지쪽 새싹들도 곧 하나 둘 고개를 내밀 것이다. 어디선가 흙냄새를 품은 바람이 지난다. 드디어 겨울이 가고 봄이 시작된 것이다(冬去春來).

봄은 이맘때가 가장 반갑다. 봄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기쁨 물질을 만들어낸다. 진화의 과정을 겪으며 우리의 뇌는 겨울을 견뎌야하는 고통으로, 극복해야 할 시련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겨울지나 봄이 오면 저절로 반갑고 기쁜 것이다.

봄이 우리 몸에 전하는 메시지는 보다 심오하고 복합적이다. 눈(眼)은 봄 햇살의 파장을, 귀(耳)는 봄의 진동을, 피부는 봄의 촉감을 전기신호로 변환하여 뇌에 전달한다. 뇌는 이렇게 전달된 전기신호를 바탕으로 봄을 구성(simulation)한다. 이렇게 구성된 봄이 지금 내가 경험하는 봄이다. 올해는 또 어떤 봄을 만들어 낼지는 완전히 나의 뇌에 달린 것이다.

우리의 몸이 봄의 공간속으로 들어가면 신체 조직을 구성하는 각각의 세포는 봄이 주는 무수한 정보를 뇌에 전달하고 뇌는 다시 신체 각 조직에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를 전달받은 신체조직은 자체 에너지와 세포자원들을 결집하기 시작한다. 수맥이 열리고 물관이 요동치듯 가슴이 울렁이고 혈관은 확장된다. 뇌 혈류량은 증가되어 기쁨물질의 생성과 방출은 더욱 촉진된다. 낡은 세포는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고 우울한 감정은 저 멀리 밀려난다.

겨우내 무기력증은 봄의 햇살 하나만으로도 밀어내기에 충분하다. 1984년 미국 국립보건원 노먼 로젠탈(Norman Rosenthal)은 일부 우울증이 햇빛 노출로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최근 연구들도 일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봄이 주는 선물이 어디 이뿐이랴. 봄의 공간 속에서 우리 몸은 여기 저기 스스로를 회복시킨다. 한파 속에 찾아온 봄이다. 그래서 더욱 반갑고 기쁜 것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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