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 도넘은 망언 눈살
적폐청산 미명하에 분노 부채질
복수 아닌 용서로 행복한 나라를

▲ 심환기 전 울산상공회의소 부회장

요즈음 우리 사회에 막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망언은 도를 넘었다. 국민들은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정치인들은 비생산적인 이념이나 당리당략에 매몰돼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내로남불’의 논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달라고 뽑은 선량들이 천박하기 이를데 없는 말로 국민들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을 넘어 국가와 사회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뉴스를 듣다보면 분별 없는 망발에 민망할 지경이다. 국민들이 우리 정치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근래 들어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미꾸라지 같은” “망나니들의 짓거리” “홍어×같은 놈들”… 최근 정치권에서 쏟아낸 말들을 되짚어보면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다.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말도 많다. 이런 막말을 내뱉는 이유는 내 생각과 다르거나 다른 집단이라는 것이다. 과거라는 악령에 사로잡혀 미래를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지난 일을 끄집어 내 비난에 비난을 거듭하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과거 역사적 교훈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헤겔의 정반합이란 변증법적 역사발전은 맞다고 본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이란 미명하에 과거 정권의 거의 모든 주요정책을 부정하고 새로 출발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망발이 난무하는 것이다. 말이란 일단 내뱉으면 그물에 걸리지도 않고 퍼져나가고 주워담을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더불어 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말이다. 그러나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사용하기에 따라 선(善)이 되기도, 악(惡)이 되기도 한다. 좋은 말은 사람에게 사랑과 용기를, 나쁜 말은 저주와 살인을 초래할 수도 있다. 칼로 다친 상처는 치유가 되지만 말로 다친 가슴의 상처는 평생을 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 한마디 잘못하여 하루아침에 권력의 자리에서 낙마하거나 폐가망신 당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정치권이나 가진 자만의 일도 아니다.

종교집단간이나 외교관계에서도 부주의한 말 한마디로 갈등과 분쟁이 빚어지기도 한다. 조직집단에서도 상하 또는 갑을 사이에, 가정에서도 부부나 형제자매 부자 사이에 적잖은 언어폭력이 오가고 있다. 언어폭력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하기도 한다. “당신이 나에게 지금까지 잘해준 게 뭐 있어?” “당신 같은 사람을 어떻게 믿고 일을 하나?” “너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잖아?” 신뢰를 깨고 갈등의 관계로 가는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들이다. 이런 품격 없는 비판과 비난이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행복과 불행의 씨앗이 말 한마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우리 사회는 지금 온통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막말이라는 자동소총으로 무차별 난사를 해버리는 끔찍한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왜 이렇게 상호신뢰와 존중이라는 미덕이 사라지고 권모술수와 아집만이 난무하는 괴물 같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이 모든 것은 상대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분노를 이겨내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적을 물리치는 것이다. 분노 속에서 행동하는 것은 마치 배가 폭풍 속에서 항해하는 것과 같이 위험한 짓이다. 정치권에서 이뤄지고 있는 각종 적폐청산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나 폐습을 청산하고 새로운 정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갈수록 복수심으로 변하는 것 같아 두렵고 안타깝다. 행복한 나라로 가는 길은 복수가 아닌 용서다. 포용사회란 진정 이런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말의 품격과 역지사지의 배려가 포용의 시작이다.

심환기 전 울산상공회의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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