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반만에 전국 130대 명산 완등
평생 잊을수 없는 수많은 기억들
한번 더 도전…또다른 모습 기대

▲ 황보승혁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산은 낚시와 더불어 ‘국민취미’라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생활이다. 최근 낚시에 밀려 부동의 1위 자리를 내줬다는 조사결과도 있지만, 법원 가족들에게는 등산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법원업무가 주로 책상에 앉아 기록과 씨름하는 것이다 보니 취미로는 정적인 낚시보다는 활동적인 등산과 궁합이 잘 맞는 모양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전국에 낚시동호회 있는 법원은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등산동호회 없는 법원은 찾기 어렵다.

필자도 시험공부하는 동안 기분전환삼아 가까운 산을 오른 것이 계기가 되어 법원에 와서도 종종 산을 탔더랬다. 그러다 10여년 전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하던 중 무릎에 무리가 와서 등산 자체를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작한 것이 2017년 여름경이다. 처음에는 무릎상태에 반신반의하면서 국립공원이라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였는데, 어느덧 130대 명산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130대 명산이란 산림청과 등산의류업체 ‘블랙야크’, 인터넷 사이트 ‘한국의 산하’에서 각각 선정한 100대 명산을 중복된 것을 제외하고 합산한 것을 말한다. 2017년 여름 점봉산 곰배령을 시작으로 작년 연말까지 1년6개월 만에 130대 명산을 완등하였다. 어지간히 서두르고 ‘깝친’ 결과였다. 연가를 내기도 하였지만 주로 금요일 업무가 끝나면 시외버스나 기차로 이동하여 주말 이틀 동안 인접한 산 2~3개를 오르고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그 바람에 전국의 대중교통 사정과 숙박업소 현황에 해박해진 것은 덤이라 하겠다.

월출산에서는 ‘별의 길’이라고 이름붙인 나만의 등산루트(산성대와 구정봉, 경포대와 천황사를 네 꼭짓점으로 하여 별 모양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만들기도 하였고, 가벼운 차림으로 가을산행에 나섰다가 진눈깨비를 만났던 한라산은 지금도 내 컴퓨터 바탕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멋진 상고대 사진을 남겨주었다. 울산에 부임하자마자 이른 봄기운에 취해 시작한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한여름 뙤약볕과 소나기에 죽도록 고생한 운장~구봉산 종주와 두타산, 가을 단풍이 온몸을 붉게 물들일듯한 계룡산과 속리산, 겨울 눈길 산행의 참맛을 보여준 덕유산 영구종주와 태백산, 도심 속의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는 북한산과 도봉산, 4시간 뱃길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울릉도 성인봉과 홍도 깃대봉 등등 130개산 모두가 각자의 매력을 뽐냈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설악산이 아닐까 한다. 단풍 머금은 화채능선과 서북능선을 좌우에 끼고 위로는 높고 청명한 가을하늘, 앞으로는 넓고 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진 그 가운데 바윗길을 하루종일 걸어간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는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비록 무릎연골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누린 호사라는 것, 그래서 다시 누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등산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다음의 충고를 꼭 해드리고 싶다. 등산화와 등산배낭 정도는 제대로 갖출 것, 등산배낭을 맬 때 가슴버클과 허리버클을 단단히 채울 것, 가급적 등산스틱을 사용할 것, 평소 레그프레스 등으로 무릎 주위 근육을 단련시킬 것 등등. 오랫동안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 중 무릎이나 척추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등산을 하면서 건강을 해쳐서야 되겠는가.

지난 1년6개월 동안 뭐에 홀린 듯 주말마다 산을 타는 모습을 보아온 주위 사람들은 지난 연말 완등 이후 목표를 상실한 듯한 필자에게 ‘앞으로 뭘 할거냐’고 걱정하듯 물어오곤 한다. 그 질문에는 야구를 정말 사랑한 시카고 컵스의 ‘미스터 션샤인’, 어니 뱅크스(Ernie Banks) 선수의 유명한 말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It’s a great day for a ballgame. Let’s play two.” ‘멋진 날이잖아 한번 더하지 뭐’ 정도로 의역하면 되려나. 그럼 산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리라.

황보승혁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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