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어떤 분야의 중심지를 메카(Mecca)라고 한다. 메카는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가 태어난 도시로 모슬렘이라면 일생에 꼭 한번 방문해야할 성지다. 암각화 연구자들에게 메카를 꼽으라면 어디라고 할까? 아마도 많은 연구자들이 알프스라고 할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암각화 유적들과 연구자 밀집지역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말부터 수백 년 동안 진행해온 연구사적 의미도 남다르다. 이탈리아 발카모니카(Val Camonica)는 유네스코 세계바위그림조사(WARA) 프로젝트와 1968년부터 시작된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하는 이 작은 도시는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첫 번째 도시이기도 하다.

알프스(Alps)의 어원은 라틴어 ‘흰’ 또는 ‘빛나는’ 의미인 ‘albu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리적으로 지중해 연안에서 북쪽으로 프랑스, 이탈리아를 거쳐 동쪽으로 스위스와 독일, 오스트리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활 모양으로 서유럽을 가로지르는 산맥이다. 암각화는 알프스 막딤, 오뜨 발레드 드 루베이, 발다오스트, 발레즈, 보드, 발카모니카와 발테리나, 트렌티노-알토-아디제, 베네티아, 루니지아나 등지에 밀집해 있다. 프랑스의 몽베고(Mont-Bego)와 이탈리아 발카모니카(Val Camonica)를 알프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꼽을 수 있다.

▲ 알프스 몽베고 암각화 유적. 해발 2872m에 이르는 몽베고 정상 주위로 약 4만점의 암각화가 분포하고 있다.
 

알프스의 선사시대 사람들은 사계절 만년설이 덮인 높은 산을 신성한 곳으로 믿으며 암각화를 남겼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역사시대 사람들은 악마들이 사는 곳으로 여기며 등산을 두려워했다. 1460년 몽베고에 올라 암각화를 본 여행가가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악마들이 바위에 새긴 기이한 그림과 참혹한 지옥 같은 풍경을 보았다’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당시 산위에서 암각화를 보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악마의 상징인 소뿔과 뱀, 사람이 살수 없는 황량한 산정과 호수, 수시로 내리는 우박과 번개 등 기이한 풍경으로 묘사하였다. 1786년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을 등정했던 파카르와 발마가 산꼭대기에 악마가 살지 않는다는 말이 알피니즘(alpinism)의 시초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유럽인들에게 두려움 없이 산을 오르는 것은 18세기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알프스 암각화 조사와 연구도 이즈음 시작되었다. 울산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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