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2)

▲ 네팔 박타푸르의 타우마디 광장. 멀리 히말라야 설산까지 전개되는 장쾌한 시야, 토속건축들로 위요된 방형 광장, 그 광장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5층 탑, 건물 앞에 서있는 석상들의 생동감, 도무지 어디에 눈을 두어야할지 모르는 새로운 광장이다.

시골길 달려 도착한 박타푸르
저마다 조형미를 뿜어내는
커다란 광장과 탑, 건물등
독창적 예술품에 넋이 나간듯
         
미로같은 도시의 골목서 만나는
탑, 사당, 정자, 연못 등등
다양한 공공 공간들은
주민들의 삶에 그대로 녹아들어

솔직히 네팔의 전통도시나 건축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었다. 학계에서도 알려진 것이 없었고 심지어 관광 대상으로도 널리 알려진 유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인도의 주변부로서 인도문명의 지방적 번안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경제력 수준도 문화유산을 보존할 만큼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 문명의 본산이었던 인도에서조차 실망을 금치 못했던 터라 그 주변부인 네팔에 대해서 더 큰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박타푸르(Bhakapur)는 그나마 전통도시와 건축을 보존하고 있다는 소개를 받고 방문한 첫 번째 도시였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달려 도시의 입구로 들어서니 제법 고풍스러운 건축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벽으로 둘러싼 것도 아닌데 허름한 아치문을 두고 입장료를 받는다. 도시를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받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25달러에 달하는 외국인용 바가지 입장료도 왠지 시작부터 불길한 예감을 준다.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예측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토끼 굴에 빠진 앨리스처럼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빨려든 것이다. 도시 입구에서 왕궁과 광장을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달발(Darbar)이라는 커다란 광장 안에 범상치 않은 석조와 목조탑들이 열 지어 나타난다. 광장은 긴 아케이드를 갖는 2층 목조 건축으로 에워싸여 있다. 단언하건대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보다 더 아름답다. 그 유명한 산 마르코 성당의 파사드를 제외한다면 심심하기 짝이 없는 광장의 경계가 아닌가. 아케이드에 빼곡히 걸터앉은 여행객들의 넋 나간 표정이 이 광장의 충격적 장면을 반영한다.

광장 안에 세워진 탑과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독창적 예술품이다. 다소 단순하고 연속적인 경계부의 건물들은 이 작품들을 담아주는 틀이 된다. 그 한쪽 면이 왕궁이라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왕궁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어떤 권위적 요소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광장 안에 배치한 각종 조형물들이 정신을 빼앗는다. 석조와 목조, 벽돌조의 조형물들이 각기 독특한 조형미를 뿜어낸다. 규모도, 높이도, 장식도 각기 다르다. 어느 하나도 대충 만든 것이 없이 독창적이면서 절묘하게 대비적 조화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목조 사원은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다. 인도 근처의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중층의 목조 기와지붕, 육중하면서도 길게 뻗은 처마, 그것은 중국과 우리의 건축에서도 나타나는 중층 탑의 체감률까지 갖추었다.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지만, 학계에서는 이를 ‘네와르 파고다’라고 부른다. 네와르식 탑이라는 뜻이니 우선 이곳의 독자적 형식이라고 가정해 두자.

달발 광장은 시작에 불과했다. 유럽의 중세도시처럼 광장은 모서리 부분에서 작은 틈을 만들어 골목으로 이어진다. 그 골목은 다음 세계로 안내하는 과정이 된다. 그것은 전시실 사이를 이어주는 갤러리와 같이 다음에 나타날 전시장과 작품에 대한 기대를 응축 시킨다. 터널 출구처럼 어두운 골목의 끝에서 눈부신 햇살이 강한 흡인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타우마디(Taumadhi) 광장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 멀리 히말라야 설산까지 전개되는 장쾌한 시야, 토속건축들로 위요된 방형 광장, 그 광장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5층 탑, 건물 앞에 서있는 석상들의 생동감, 도무지 어디에 눈을 두어야할지 모르는 새로운 광장이다. 신비로운 종교건축들이 오브제를 이루면서도 상가와 주택들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상이 느껴진다.

광장은 사람들의 일상으로 가득하다. 그들의 일상을 담는 상점과 주택, 호텔, 음식점들도 18세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다. 저녁이면 힌두예배를 드리는 독경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운다. 타우마디 광장은 도시 하부 구역의 중심이었다. 박타푸르는 상부와 하부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두 구역간의 결속을 다지는 의례가 이곳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골목을 따라 도시의 신비스런 미로 속을 탐험한다. 길가의 건물들은 비록 낡고 허름하지만 화려했던 과거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길의 교차점에는 어김없이 탑이나 사당이 나타난다.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일상적 기도처로 살아있다. 길가에 그늘이 드리워진 작은 정자들은 주민과 나그네의 쉼터가 된다. 파티(pati), 혹은 만다파(madapa)라고 부르는 공공 휴게소이다.

골목은 광장만큼 큰 수조로 연결되기도 한다. 도시 안의 수조는 또 다른 신선함을 준다. 서구의 어느 도시에서도 이처럼 규모가 크고 다양한 인공연못이 도시의 공공 공간으로 만들어진 사례를 본적이 없다. 어떤 목적으로 조성되었는지를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것은 또 다른 형식의 광장이다. 연못에 투영되는 주택과 사원, 정자들이 그림자가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만들고 있다.

세상에 아름답고 경이로운 건축은 수없이 많다. 그 많은 걸작들 중에서 도시의 공공적 의미를 갖는 건축은 매우 드물다. 후진국일수록 깊은 왕궁 속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담장 속에 감추어두기 마련이다. 그것은 왕이나 귀족, 혹은 고위 성직자들을 위한 것이지 시민의 일상과는 관계가 없다. 피렌체같은 유럽도시가 찬사를 받는 이유는 예술적 걸작과 건축들을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도시와 더불어 의미를 갖는 건축이 바로 진정한 걸작일 터.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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