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과

완연한 봄이다. 들판은 새로운 모습으로 갈아엎어져 물씬 물씬 흙냄새를 풍긴다. 봄바람이 마른 덤불을 헤적일 때마다 한 움큼씩 돋아난 새싹들은 이미 저만큼씩 자라나 봄 햇살이 수줍고, 언덕배기 군데군데 살갗처럼 드러난 누런 황토엔 올해도 어김없이 제비꽃이 피었다. 그 곁에서 뛰어놀던 유년의 추억이 있어 봄은 더욱 애틋하다. 그땐 울다가도 금방 웃었다. 제비꽃처럼 울다 제비꽃처럼 웃었다. 울다 웃을 때마다 우리들 유년의 봄 언덕에는 봄꽃이 한 송이씩 피어올랐다.

감정의 민첩성이란 감정의 맹목적인 덫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을 압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도 거뜬히 이겨내며 주변 환경과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여러 연구의 결과 감정의 민첩성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건강은 물론이고 사회적 성공이 그 만큼 보장된다.

감정의 민첩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감정의 경직성이다. 감정의 경직성은 감정의 덫에 걸려 다양한 질병들을 초래한다. 그러나 감정의 경직성(감정의 덫에 걸리는 것)은 학습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첫 출발점은 감정을 그냥 ‘존재한다’로 바라보는 것이다(수전 데이비드 <감정이라는 무기>, 북하우스, 2017).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자 수전 데이비드는 자기감정을 자신과 분리된 상태에서 관찰할 때 감정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의 덫에 걸리는 순간 강력한 감정들은 늘 우리를 지배해서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우리를 잘못된 행동으로 이끈다. 감정으로 인한 인식왜곡의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왜곡된 진실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며 기존의 낡은 방식으로 습관처럼 대응한다. 결국 감정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지금 지천에 봄꽃이 한창이다. 봄꽃 한 송이가 어찌 계절의 섭리만으로 저리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봄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수줍음을 설렘으로, 설렘은 꿈과 희망으로, 그래서 피어난 꽃이기 때문이다. 가자 꽃구경, 묵은 감정을 날려버리기에는 봄꽃 한 송이만으로도 충분하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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