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직장문화, 신구세대 갈등 만연
상호 세대차 이해하려는 마음 없으면
둔감한 꼰대와 심약한 젊은이만 남길듯

▲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중학교 입학 직후 아들 어깨가 무거워보였다. 가방을 들어보니 책이 꽉 차서 돌덩어리 같다. 이유를 물으니, 혹시라도 요일별 준비물을 빠뜨릴까봐 모든 교재를 넣어 다닌단다. 실수해서 선생님께 야단맞기 싫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어떻게 학교까지 걸어 다니니? 그깟 야단 좀 맞으면 어때서. 아빤 네가 선생님께 야단도 좀 맞아봤으면 좋겠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더니 아들은 이해 안 된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 때의 예감이 맞았을까. 최근 일본 도쿄 한 대학에선 예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야단맞는 법’에 대한 강의가 개설되었다고 한다. 기업에선 관리직을 대상으로 ‘야단치는 법’ 연수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연합뉴스 2019.3.5.) 황당해 보이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야단맞지 않고 자란 세대가 신입사원이 되어 상사에게 받는 꾸지람은 자신의 삶이 부정당한 듯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반대로 혼나면서 자라온 상사는 나름대로 조심스레 지적했는데도 상대가 충격을 받았다고 하니 지도할 자신이 없어진다.

세대 간의 커다란 간극은 개인의 고통과 업무 비효율을 초래하고 결국 퇴사로 끝나기도 한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의 ‘2016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 의하면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라고 한다. 퇴사는 피했지만 고통을 참으며 근근이 버티는 사람도 많으리라. 취업전쟁을 뚫고 겨우 들어온 직장에 이런 시련이 기다리는데도 일단 취직부터 해야 하는 취준생이 더욱 안쓰럽다. 야단맞는 스트레스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알 수 없지만, 1년 내 퇴사 이유로 ‘급여 및 복지’나 ‘근무환경’을 제치고 ‘조직 및 직무 적응 실패’가 절반이나 차지한다는 조사 결과가 그 크기를 가늠케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0여 년 전 회사에는 신입사원 연수마다 군대를 모방한 극기 훈련이 유행하였다. 입사 전에 소속감과 인내심을 키우려는 의도였지만 일방적이고 무리한 훈련은 요즘 세대에 맞지 않아 거의 사라졌다.

기성세대가 기업문화를 결정하니 신세대는 따라오라는 식으로 세대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 반대로 직장에서 발언권이 약한 신세대가 사회여론을 등에 업고 세대전쟁을 벌이는 것도 그 한계와 부작용이 뚜렷하다. 그보다는 혼내기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 70대는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생존에 급급했고, 50대는 그런 부모 아래서 ‘빨리빨리’를 외치며 성장해왔다. 생존과 효율을 우선하는 시절에 개인의 감정을 배려할 여유는 없었다. 초등학생은 육성회비를 안낸다고 벌섰고, 중학생은 머리카락이 길다고 머리 한가운데를 교사가 이발 기계(속칭 바리깡)로 밀던 시절이었다. 시험성적을 학생들 앞에 공개하는 것은 기본, 떨어진 점수만큼 맞기도 하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심각한 인권침해지만 당시에는 무심히 넘겼다. 세월이 흘러 지금 20대는 어떤가. 이들은 생존 위협은커녕 과보호 속에서 시험경쟁의 압박으로 가득 찬 시절을 보내왔다. 공정한 조건을 중요시하고, 조금이라도 부당한 지적은 참기 힘들다.

우리는 마음의 센서, 혹은 저울로 사건의 무게를 감지하고 대응을 결정한다. 기성세대는 생존과 성공을 측정하는 육중한 저울로 삶의 무게를 측정한다. 크고 거친 저울은 생존에 지장 없고 성공에 도움 되면 원칙 무시와 우격다짐에도 꿈쩍 않는다. 반면 신세대는 작고 민감한 저울로 섬세한 감정과 상처받은 마음을 정밀하게 측정한다. 세월에 장사 없는 법. 결국 기성세대는 물러나고 신세대의 저울이 속속 채택될 것이다. 경제가 안정되고 제도가 합리적이라면 신세대의 저울이 인간의 행복을 좀 더 증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되긴 어렵다. 직장마다 업무 특성과 변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개성과 시행착오가 장려되는 회사도 있지만, 실수가 용납되지 않고 도제식 교육이 남아 있는 병원도 있다. 일부 회사는 권위적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장, 호칭 등 규정을 바꾸지만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세대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자신의 마음속 저울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결국 둔감한 꼰대와 심약한 젊은이로 남기 쉽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