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

반구대 암각화·천전리 각석은
세계 문화유산들과 다툴만큼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보물
선사·신라시대 집터유적도 산재
대곡천을 따라 이어진 옛조상들의
삶을 체험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관광자원은 세 종류다. 첫째는 자연자원. 그랜드캐년, 나이아가라폭포, 알프스몽블랑, 가지산, 대왕암 등이 그것이다. 눈으로 보며 자연의 힘과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둘째는 인간이 만들어 낸 역사문화자원이다.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로마 콜로세움,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아우슈비츠수용소, 철원 땅굴, 반구대 암각화 등이 이에 속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인간의 위대한 업적 또는 잔혹했던 역사 등을 되새기며 옷깃을 여미게 된다. 세 번째는 체험자원이다. 디즈니랜드, 라스베이거스, 일본 온천, 프랑스 보르도, 이탈리아 오페라극장, 용인에버랜드, 울산 언양 불고기단지, 중구 문화의거리 등이 이에 속한다. 그 중 나는 두 번째 역사문화자원을 좋아하며 이를 보는 것을 주로 여행대상으로 삼는다. 아테네, 로마, 파리, 런던의 거리를 메우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부류이다.

초점을 울산에 맞추어보자. 울산에는 과연 어떠한 자원들이 경쟁력이 있을까. 우리 울산에는 가지산이나 대왕암 등 아름다운 자연자원이 적잖이 있지만 국제적 관광명소가 되기에는 벅찬 게 사실이다. 언양 불고기단지나 중구 문화의거리도 체험자원의 국제적 명소가 되기에는 많이 모자란다. 한편 이들에 비해 울산의 역사문화자원은 훨씬 찬란히 빛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대곡리(大谷里)의 반구대암각화(盤龜臺岩刻畵)와 천전리각석(川前里刻石), 바로 그것이다.

울산에 산 지도 어언 40년, 부끄럽게도 최근에야 반구대암각화를 보고 왔다. 국보 285호로서 지금으로부터 6000~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살던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유물이다. 암각화의 구체적인 제작시기, 도구와 새김법, 그림의 의미, 바위의 재질, 풍화과정, 보존방법 등 학술적인 얘기는 전문가들의 몫이고 나는 그저 맹랑하게 상상화나 그려본다.

암각화박물관에 비치된 자료를 보니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에는 현재의 태화강역, 울산 남구청을 포함하여 울산의 상당부분이 바다였고, 구영리, 사연리, 범서 굴화리도 바다의 직접 영향권이었을 것이란다. 대곡천은 두서면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소규모 개천들과 합류하면서 천전리 각석, 반구대 암각화 주위를 휘돌아 사연호, 범서의 선바위를 거치며 태화강 본류를 이루고 바다로 유입된다. 적절한 강폭에 풍부한 수량의 청정수가 천천히 굽이굽이 흐르던 그곳, 그리 높지 않은 산들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그곳은 평지도 널찍하여 지금 보아도 명당자리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을 보노라면 그들이 그곳에서 천렵을 하고 고기를 잡아 생활을 영위하던 모습이 어렵지 않게 상상된다. 그들은 유일한 이동수단이었을 대곡천 변을 따라 상류로 조금씩 탐험해 나갔을 것이고, 암각화로부터 약 3km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주거 포인트를 발견한다. 이곳이 천전리다. 이곳 또한 천혜의 비경이다. 그 훨씬 이전인 백악기시대엔 공룡들조차 이곳이 천하의 명당인줄 알았던지 다수의 발자국을 남겼다.

아무튼 어디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두 곳은 서로 이웃이 아니었을까. 상대적으로 바다에 가까운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와 배 등 어업과 관련된 일상들이 그림으로 새겨져 있는 반면, 역시 국보 147호인 천전리각석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각종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그로부터 몇 천 년 후 신라시대에 이르러 이 경치 좋은 곳을 즐겨 찾던 경주의 왕족들이 이곳에 여러 차례 들러 그 바위에 일기를 써놓음으로써 각석의 가치는 배가되었다. 이 두 개의 국보를 접한 것은 나에겐 너무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천전리각석은 손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반면, 반구대 암각화는 건너편에서 망원경으로도 잘 안 보이는 거리에 있다. 사연댐 수위가 높아지면 암각화가 물에 잠기니 관람객의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유산이 수천 년 동안 잠자다 발견된 지 이제 48년. 불행히도 이들이 발견되기 직전에 사연댐이 만들어진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두 유물을 차례로 보려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쉽지 않은 등산길을 걸어야 한다. 그 시대 선조들이 걷던 대곡천변을 따라 걸으며, 그들의 생활상을 부분적으로나마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꼼꼼하게 국제화를 추진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 만년 전 석기시대의 집터가 다수 발견된 KTX울산역 근처 신화리(新華里) 유적은 별개로 하더라도, 작년 말엔 반구대 주변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지가 다수 발견되었다니, 대곡천 주변은 적어도 7000년 전부터 1500년 전까지 적어도 5500년간에 걸쳐 혹시 한반도 동남부의 가장 살기 좋고 번화한(?) 다운타운은 아니었을까. 이곳은 최근 나폴리 앞바다 속에서 발견되고 있는 2000년 전 로마시대의 호화로웠던 별장유적들보다 훨씬 귀한 유물유적의 보고(寶庫)인 것이다.

이토록 소중한 암각화의 보존, 학술연구, 시민참여행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등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울산대학교 암각화보존연구소, 반구대포럼, 울산박물관 암각화세계유산등재 학술팀, 울산발전연구원 울산학연구팀, 그리고 대곡박물관과 암각화박물관 관계자들께 힘찬 응원과 감사를 보낸다. 때마침 이를 관광활성화에 연결시키고자 울산관광공사의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울산은 60년 전 만들어진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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