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철학 입문서를 보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를 철학의 시초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탈레스가 했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주장을 보게 되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자연의 모든 것이 물로 이루어져 있거나 혹은 만물이 물로부터 와서 물로 돌아간다고 하니 말이다. 현대 물리학에 의하면 만물은 물리적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물 역시 산소와 수소 원자들의 결합물에 불과하다.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틀린 주장을 했던 탈레스가 철학의 시초라니.

탈레스가 활동할 당시에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일으키는 법칙을 신화로 설명했다. 이 신화는 세대를 거듭하며 구전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물물교환을 위해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 얘기를 해보니 저마다 신화가 다르다. 자연은 하나인데, 설명이 다양할 뿐 아니라 어떤 설명이 옳은지 확인해 볼 방법도 없었다. 풍랑을 일으킨다는 포세이돈 신을 어디서도 만날 수도 없고, 그가 행사하는 그 힘의 정체를 밝혀 볼 수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탈레스의 생각은 가히 혁신적이다.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는 그의 주장은 이성적 능력을 가진 그 누구라도 참과 거짓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종류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물은 도처에 있고, 동식물은 물을 필요로 한다. 이런 근거들은 민족 제한적인 신화와 달리 합리적 정신에 의해 검토될 수 있는 일반성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탈레스는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을 물이라는 하나의 존재 혹은 원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런 시도를 환원이라고 부른다. 과학은 환원을 추구한다. 다양한 것들이 땅으로 떨어지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단순한 원리로 설명되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물은 수소와 산소 원소라는 보다 더 단순한 존재와 그 원리로 설명된다.

시간이 흘러 철학에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 등이 갈라져 나왔지만, 철학 고유의 분과들은 여전히 남아서 나름의 역할을 맡고 있다. 여전히 철학은 學이다. 어떤 주장에 누구나 검토해 볼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함, 즉 논증이 철학 활동의 가장 기본이다.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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