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미란 울산대학교 법학과 조교수

항상 불필요한 생각이 많다. 한편으로는 좀 더 생산적인 고민에 시간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불필요한 생각 속에서 또 나름 삶을 이끄는 힘을 발견할 때도 있어 여전히 그러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봄이 시작되는 즈음에 만난 엄기호 작가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가>라는 책 덕분에 올봄에는 ‘곁’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라 내내 마음에 맴도는 것일까 싶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생활에서,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도 타인을 위한 ‘곁’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꾸만 떠오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책에서는 고통을 겪는 사람과 그 곁에 선 사람, 고통의 곁에 선 사람을 지키는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요즘의 삶에는 고통을 겪는 사람을 위해 곁을 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말할 것도 없고, 나와 다른 이를 곁에 두고 볼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경우가 많다. 나와 달라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서, 귀찮고 불편해서, 또는 그 밖의 이유로 타인을 멀리하거나 거리를 두면서 살게 된다.

물론 개인의 삶이나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는 요즘,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만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도 없고,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기를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았을 때, 지친 삶을 위로해 줄 누군가가 없음에 외로움을 느끼거나 상대에게 이해받지 못해서 힘들다면 한 번쯤은 내 안에 누군가가 설 수 있는 곁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친밀한 관계로 인식되는 가족이나 친구의 존재는 원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이해나 배려, 책임 등은 불편하고 귀찮은 것으로 여긴다거나, 누군가를 내 곁에 두고 상대의 감정을 나누어 짊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도 상대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나를 위해 곁을 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모순되지 않은가.

오로지 나 하나 밖에 설 수 없는 낭떠러지 같은 마음 공간에 서서는 타인의 곁에 껑충 뛰어들 수 없으며, 타인이 내어주는 곁이 내가 함께 설 수 있고, 위로받고 이해받을 수 있는 곳이기를 원한다면 내가 타인에게 내어주는 곁 역시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달력을 넘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눈앞에 쏟아지는 수많은 날들을 보면서, 올해에도 어김없이 가정의 달 5월이 돌아왔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감사한 분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르면서도, 동시에 내 주머니 사정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특별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간단한 선물로도 해야 할 도리는 한 것이니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번 5월, 소중한 그 누군가에게 마음이 담긴 선물이나 값진 선물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만약 단 하나를 주어야 한다면 당신의 ‘곁’을 주는 것은 어떨까. 아늑하고 따뜻한 당신의 곁에선 그 누군가 역시도 반드시 당신에게 그러한 곁을 내어 줄 것이니, 타인에게 내어준 곁은 결국 자신에게도 소중한 선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배미란 울산대학교 법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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