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참외
샛노란 참외가 제철을 맞고있다. 지금은 옛일이 됐지만, 한때 울산의 대표 농산물로 참외가 거론되던 시기가 있었다.

‘울산참외’에 관한 기록은 꽤 오래 전 문헌에서 확인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렇게 기술 돼 있다. ‘(언양읍성) 북성 밑에서 난다. 그 종자가 경적전에서 나기 때문에 적전고라고 한다. 해마다 겨울에 심어 4월 그믐에 진상한다. 심고 기르기가 매우 어렵다. 성종 초년에 혁파하였다.’

경적전은 임금이 경작하는 밭이다. 울산 참외가 임금의 밭에서 나는 참외와 종자가 같다는 말이다. 이를 재배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듯 하다. 성종이 즉위한 뒤 진상품에서 제외시켰다는 이야기다.

울산참외의 명성은 일제강점기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재래종인 당참외와 먹참외가 인기였다. 정상태, 양명학 등 지역원로들은 당참외의 속이 붉은빛을 띠었다고 기억했다. 먹참외를 설명하는 농촌진흥청 자료에는 그 크기가 지금의 참외보다 컸고, 검푸른색을 띠었다고 돼 있다.

재배지는 주로 태화강변이었다. 상류인 상북면에 대규모 참외 단지가 있었고, 하류인 달동과 조개섬에서도 키웠다. 시장 바닥에 수북하게 쌓였거나 트럭에 실려 출하되는 울산참외 사진이 1930년대 신문에서도 확인된다. 시세는 한 접에 1원10전. 다른 지역 참외 보다 곱절이나 높았다.

울산참외는 왜 명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졌을까. 급격한 공업화로 인한 오폐수와 공해가 주원인이다. 농지가 사라지며 재배환경마저 나빠졌다. 이와 함께 1957년 수입된 샛노란색 은천참외의 영향도 크다. 불과 수년 새 30여종 재래품종 참외시장이 잠식당했다고 한다. 홍영진기자 참고 <울산의 음식>(울산학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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