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남목중 교사

지난 4월30일 오후. 시교육청 책마루에서 오피니언 리더단 연수가 있었다. 연수 안내 공문에는 소속 기관의 미담 사례를 한 가지씩 준비해 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학창 시절, 숙제만큼은 잊지 않고 꼬박 꼬박 다 해갔던 습관 탓이었을까. 출장일이 다가오자 어떻게든 미담 사례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에 걱정지수가 점차 상승하기 시작했다. 틈이 날 때마다 기억을 헤집었음에도 미담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한 나는 결국 같은 교무실을 쓰는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SOS를 요청했다.

“졸업생 얘기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전해들은 우리 학교 미담의 주인공은 작년 3학년이었던 A라는 학생이었다. 유난히 인사성이 밝고, 심부름을 곧잘 해주던 A.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집 방향이 같아서 퇴근길 버스 안에서 종종 마주치던 A가 휴먼 다큐멘터리에 나와도 될 만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던 날 버스 안에서 또 A를 만났다. 너의 이야기를 교단일기에 써도 되겠냐는 물음에 A는 흔쾌히 “네”라고 답했다.

A는 초등학교 때부터 B라는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 B는 다리가 불편해 혼자서 이동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차례 수술을 했지만 턱이 있는 곳은 올라가기 힘들었고, 책가방을 들고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A는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B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B의 집에 자주 놀러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A와 B는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았다. 3년 동안 같은 반은 되지 않았다. B와 같은 반에는 또래 도우미 친구들이 있었지만 B의 등교 길에는 늘 A가 함께 했다. A는 아침 일찍 일어나 7시30분이면 집을 나서 B가 사는 아파트로 갔다. 둘은 함께 부르미(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다. 어쩌다가 A가 늦잠을 자는 날이나 선도부 활동을 하는 날 등을 제외하고는 3년을 함께 등교했다.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제가 힘든 것보다는 친구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라고 했다. 오랫동안 B를 도와주면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느냐고 묻자 “제가 불편하지 않게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죠. 소중함을 느끼고요. 그리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라고 했다.

A와 B는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둘은 지금도 중학교 때와 똑같이 등교하고 있다. 켜켜이 쌓여온 둘의 시간은 A의 진로 결정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A의 장래희망은 사회복지사다.

각급 학교에서는 매년 장애인의 날을 전후로 장애 이해 교육 주간을 운영한다. 이러한 기간에 A같은 학생들의 선행에 대해 알려준다면 여러 학생들은 장애가 있는 주변의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선행을 하는 학생도 자신의 행동에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도 평소처럼 등교했을 A에게, “선생님은 이 글로 너의 3년을 칭찬할게!”라고 전하고 싶다. 이정현 남목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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