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호 철학박사

철학의 다양한 문제들이 앞으로 소개될 것이다. 미리 말해 둬야 할 것은 이 문제들에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수업에 익숙한 우리에게 정답이 없는 문제는 뭔가 낯설다. 정답이 없는 문제는 결국 뭔가 잘못된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생각을 다르게 해보자.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정답이었을까?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은 정답일까?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것은 정답일까?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그곳에 원주민이 생활하고 있었기에 ‘발견’이라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다.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리만(G. Riemann)이 공간이 휘어질 경우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 보다 작아지거나 커질 수 있음을 증명하였으므로, 적어도 비유클리드 공간 내에서만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임이 참이게 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 모르겠다. “기존의 지식이 정답이 아닐 지라도 그걸 일단 알아야 나중에 틀렸다는 것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옳은 생각이다. 다만 우리가 꼭 ‘정답’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정답을 찾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더 많이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더 나아가 ‘정답’이 있는 문제는 모든 문제들 중 일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삶은 ‘정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 아니라 ‘더 많이 알아가는’ 과정일는지 모른다.

사랑이 무엇인가? 당신은 ‘사랑의 본질’을 감히 얘기할 수 있는가?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혹은 모든 사람들이 체험한 그것을 ‘사랑’이라고 지칭하게 할만한 필요충분 조건을 말할 수 있는가? 사랑의 본질, 즉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답을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이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과정 속에서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후회하고, 노력하면서 우리의 정신은 더욱 더 풍요로워진다. 철학은 꼭 그 사랑과 닮았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당신은 사랑하지 않겠는가? 김남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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