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1일로 집권 34주년을 맞아 아랍 세계의 지도자로는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우게 됐다.

 동시에 그렇게 오랜 기간 집권하면서도 여전히 가장 알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지도자라는 별칭도 유지할 전망이다.

 최근들어서 의 이미지가 다소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그는 지난 1969년 27세의 나이로 이드리스 왕을 몰아내고 권좌에 오른 후 끊임없는 기행과 과격 행동 때문에 로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권좌에 오르자마자 처음했던 조치가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뜻에서는 달력에서 각 달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었을 정도다.

 그가 집권한 34년동안 석유부국이던 리비아는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각종 제재로 경제위기에 빠졌지만 그는 여전히 권력은 국민들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1일 집권 34주년 기념 TV연설에서 “무식하고 천박하고 증오에 사로잡힌 자들이 내가 어떻게 34년이나 권력을 유지했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는 통치하는 것이 아니다. 1977년부터 리비아를 통치한 것은 국민이며 미국이 리비아에서 정권교체를 이뤄낼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관영 JANA통신이 보도했다.

 1977년은 카다피가 선거로 뽑은 위원회를 통해 리비아를 통치하기 시작했으며 리비아를 또는 라고 부르고 자신의 공식 직함을 이상으로는 부르지 않기로 한 해이다.

 이날 TV연설에서 카다피는 자신이 1977년에 펴낸 자신의 혁명기록인 『그린 북(Green Book)』이야말로 인류애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며 “우리는 구원으로 가는 길로써 이 책을 세계에 소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에 담긴 자신의 아이디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있는 제3의 학설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랍권의 이스라엘과의 투쟁에서는 챔피언으로 불릴 정도로 강경한 반유대정책을 펴왔지만 최근에는 이런 입장에서 다소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최근에 펴낸 백서에서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통참여하는 이라는 국가를 만들어 중동분쟁을 해결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또 리비아는 지난 1988년과 1989년에 자신들이 저지른 팬암 항공기와 프랑스 UTA항공기 폭파사건 유족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에도 최근 합의, 1992년부터 받고 있는유엔의 경제제재 해제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동시에 서구국가들과의 새로운 관계구축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오랫동안 아프리카 반군조직과 과격단체들을 후원했다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요즘은 막대한 원유보유량을 지렛대로 국제사회의 분쟁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자청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2000년에는 필리핀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붙잡혔던 독일인 인질들을석방했고 최근에는 알제리에서 포로로 잡혀있던 유럽인 14명을 석방하는 것을 지원했다. 또 이집트, 수단, 튀니지 등 다른 아랍 국가들과 조약체결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은 여전히 남아있다.

 카다피 정부는 지난해 아랍 연맹에서 탈퇴했다가 “이런 결정은 국민들이 해야한다”며 탈퇴를 철회했다.

 카다피는 1일 연설에서도 “아랍세계가 붕괴하지 않으려면 아랍국가들이 제시하는 모든 제안들을 포함하는 아랍 연맹을 구성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사회주의적인 조치들을 일부 포기하는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 그는 경영상태가 악화된 정유회사 등 국영독점기업들을 민영화할 뜻을 내비쳤으며 공공부문의 실패를 인정하기도 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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