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영 울산문인협회 회장

‘연변과 하얼빈에서 민족의 얼을 찾다’라는 슬로건으로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도문시 석현진 수남촌에서 열린 울산문협 해외문학교류행사는 기대이상의 성공으로 마무리됐다.

연변시인협회가 주관한 해외문학교류의 밤 1부행사에서 연변시인협회 최삼룡 평론가가 ‘광복전 중국 조선족 문학 개관’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어진 2부 행사는 친교의 밤이었다. 해외문학교류행사가 열렸던 수남촌은 과거의 묵은 흔적을 벗고 새롭게 단장되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수남촌이 역사에 길이 남을 봉오동 전투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1920년 6월7일 일제강점기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을 비롯해 독립군연합부대와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서 독립군연합이 대승을 거두었던 곳이 바로 수남촌에서 마주 보이는 중국 지린성 왕칭현 봉오동 계곡이다. 지금은 역사의 현장은 사라졌지만 반일 혁명의 근거지로서 우리민족 선열들의 피가 물들어 있는 유서 깊은 마을 수남촌에서 가진 해외문학교류행사, 두고두고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 같다.

이튿날 오전, 용정시 명동촌 윤동주 시인 생가를 들렀다가 해란강이 빤히 내려다뵈는 비암산 일송정을 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늘에 구름이 깔리긴 했으나 비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용정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자 한줄기 소나기가 내렸고 하늘은 어느새 잿빛이었다. 연길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향했다. 차창으로 다가왔다 사라지는 만주벌판의 광활한 풍경이 기를 질리게 했다. 가끔 마을이 나타났고 옥수수를 심기 위해 갈아엎은 붉은 들판, 아니면 밀림지대가 전부이다. 고속도로와 고속철이 생기기 이전에는 연길에서 하얼빈까지 거의 하루가 소요됐지만 지금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도 약 네 시간이면 충분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하얼빈에서의 일정을 다시 한 번 챙겼다. 이번 하얼빈 방문은 울산문인협회가 연변시인협회와 해외문학교류행사 연장선에서 챙긴 덤이다. 하얼빈역사 내에 지난 4월3일 새로 개관한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731부대 유적지’ 등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하얼빈에서의 이튿날,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 했다. 하얼빈역은 공사중으로 안전막이 설치돼 있고 주변이 어수선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하얼빈역사 본관 북측에 있었다. 기념관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정면으로 안의사의 입상이 우리를 맞았다. 안의사가 열차에서 내리는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가슴 뭉클한 역사의 현장을 창 너머로 볼 수 있다. 기념관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의미는 실로 대단하다.

이토히로부미 저격사건은 중국 사람들에게도 조선인의 웅비한 기개를 보여준 쾌거라 할 수 있다. 유품을 둘러보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한복을 입고 장렬하게 순국했다는 사진 설명은 가슴이 뛰어서 끝까지 읽어갈 수가 없었다. 그가 순국할 당시 31세였다. 엄청난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념관은 대한민국 디림건축과 홍익대 임영환 교수가 함께 설계했다고 한다. 기념관에는 안의사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가문, 독립활동과정, 을사늑약과 해외망명 계획, 국채보상운동을 위해 활동했던 내용들이 전시돼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것임이 분명해진다. 지금도 중요한 것은 안의사의 묘소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군이 작성한 당시의 기록에 분명히 나와 있을텐데….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나온 우리는 하얼빈시 외곽에 있는 마루타의 현장을 찾았다. 일본군의 생화학 부대가 생체실험을 했던 ‘731부대 유적지’로 대량 살상이 가능한 세균전 실험기지 현장이다. 약 3천여 명이 희생된 이곳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수용소에 비할 수 있다니 모골이 서늘하다. 일본군이 패망하면서 ‘731부대 유적지’의 모든 흔적을 지웠던 것을 1980년대 초 731부대 장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가 일본의 한 대학에서 발견됨으로써 영원히 비밀로 남겨질 뻔했던 일본군의 만행이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중국정부는 이곳을 발굴해 역사의 현장으로 남기고 있다. 비가 내리는 하얼빈, 시가지를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러시아풍 건물들이 과거 치욕의 우리역사와 겹쳐지면서 슬픈 역사의 유물 같다. 정은영 울산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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