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센터 통해 성폭력건 상담

국선 변호인이 가해자 변호 맡아

검찰 이의 제기로 해당사건서 사임

‘쌍방대리’ 방지 제도적 장치 필요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상담했던 변호사가 해당 사건의 가해자인 피고인의 변호를 맡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변호인은 두 사안이 동일 사안인 것을 몰랐다는 입장인데,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일을 막기 위해 수임 사건의 연관성을 변호인에게 주지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2일 울산지검 등에 따르면, 최근 울산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해바라기센터를 통해 피해자를 지원한 국선 변호인 A씨가 가해자인 피고인의 변호를 맡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기록을 확인한 뒤 재판부에 이의를 제기했고, A씨는 해당 사건의 국선과 사선 변호를 모두 사임했다.

A씨는 “사건 내용이 아니라 재판 진행 상황에 대해서만 상담했고, 직접 만나지 않고 통화만 해 같은 사건인지를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성폭력사건이 발생할 경우 해바라기센터가 검찰에 연락해 피해자를 위한 국선 변호인을 지정하게 된다. 비용은 모두 검찰에서 부담한다.

경찰이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한 뒤 형사고소 이외에 합의나 법리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국선 변호인 선임을 요청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범행과 관련된 기본적인 사항은 대부분 변호인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상담 이후 재판에 들어가기까지 국선 변호인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의 사정을 훤히 아는 국선 변호인이 같은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변호를 맡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고 있을 경우 피고인에 대한 방어 전략을 세우기 용이해진다.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의 변호를 모두 맡는 이른바 ‘쌍방대리’는 변호사법으로 금지돼 있으며 변호사 윤리 규정에도 위배된다. 그러나 처벌 규정이 없고, 변협의 징계 역시 경고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쌍방대리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부족하다. 변호인이 사건 서류를 꼼꼼히 파악한 뒤 동일 사건 여부에 대한 의심이 들 경우 경찰에 문의해야 확인이 가능한 만큼 변호인의 성실성과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바라기센터 상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일부 변호사는 사건 수임 루트로 해바라기센터 상담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상담 후에 국선 선임계를 내지 않으면 확인도 불가능하다”며 “쌍방대리를 막기 위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분류되는 ‘형제번호’나 기소 후 부여되는 ‘사건번호’ 등을 변호인 측에 통지해 사건에 대한 연관성을 미리 주지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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