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인생이모작’에 나선 전중석 전 지산엔지니어링 대표이사

▲ 농사와 공부로 인생이모작을 일구고 있는 전중석씨가 비닐하우스에서 흑로호를 시험재배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원하든 원치않든 우리는
긴 인생을 살아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수명은 길어진 반면
은퇴는 빨라지면서
인생 이모작은 필수가 됐다.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전중석(66)씨는
인생이모작으로 2가지를 선택했다.
하나는 공부, 또 하나는 농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벌이에 나섰던 그에게 있어
공부는 평생의 바람이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농업은 오랜기간 접어두었던
타고난 재능이나 다름없었다.
60세가 넘어 ‘두마리 토끼 잡기’를 시작한
전중석씨를 이슈인터뷰에 초대했다.

■ 평생의 바람-공부
십수년 일군 해양플랜트사업 넘기고
60에 울산과학대 산업경영학과 입학
졸업 후 산업기계공학과로 편입
울산대 산업대학원 건축도시학 석사
부산대 원예생명과학과 박사과정까지

■ 타고 난 재능-농업
취미로 30여년간 난재배·난실도 운영
9년째 울산난문화협회장까지 맡아
피부미용에 좋은 ‘흑로호’에 관심
1천평 비닐하우스에 900포기 재배
5년후 음료·피부미용팩 상품화 목표

-스스로 사업을 접고 공부와 농사로 인생이모작을 시작했다. 계기는.

“평생 해양플랜트 관련 일을 해왔다. 사업을 통해 얻고자 했던 목표에 충분히 도달했다고 판단할 즈음 글로벌 경기불황으로 해양플랜트사업의 물량이 줄어들었다. 25년간 함께 일했던 부사장에게 조건없이 모든 것을 넘겨주고 나왔다. 직원들을 모아 놓고 ‘오늘, 이 시간 여기를 나가면 다시는 안 온다.’고 말하고는 떠나왔다. 새로운 일은 그 다음에 시작했다. 딸의 권유로 일단 대학에 진학했다. 젊을 때부터 취미삼아 부업삼아 해오던 ‘난초’를 기르며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동안 해온 일은.

“1978년도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소장으로 울산에 오게 됐다. 현대건설,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용접·배관·전기케이블 등에 있어서 뛰어난 기술력이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2003년부터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주)지산엔지니어링을 시작했다. 해양플랜트 사업의 호황에 힘입어 많을 때는 직원이 530명까지 있었고 거의 400명을 유지할 정도로 잘 됐다. 최우수업체를 1회 하고, 우수업체 2회를 했다. 더욱 보람이 있었던 것은 5000일 무사고를 기록한 것이다.”

-사업을 그만두고 곧바로 대학 진학을 했나.

“딸 둘,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모두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가장으로서 해야 할 책임도 다했고 사업도 잘 마무리했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이 늘 있었다. 마침 작은 딸이 대학 진학을 권유했다. 60세에 울산과학대에 들어갔다. 산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4년째인 산업기계공학과로 편입했다. 젊은 애들이랑 공부하려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재미가 컸다. 내친 김에 대학원도 다녔다. 울산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건축도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의 생활에서 만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알게 됐다. 작은 딸이 박사를 하고 싶다면서 아빠가 먼저 들어가라고 권해서 올해 부산대학교 원예생명과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7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다.”

▲ 전중석 전 지산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전공을 계속 바꾸셨는데, 이유는.

“공부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그냥 관심이 있는 것을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지난해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농사지을 땅을 장만했다. 우연히 알게 된 흑로호(Kadsura coccinea)라는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박사과정은 원예생명과학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한 학기 마쳤는데 공부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흑로호 열매가 맺히면 성분을 분석해서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그 효과와 상품화에 대한 논문도 써내고 싶다.”

-흑로호는 어떤 식물인가. 재배에 성공했나.

 

“난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난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 놀러온 사람이 흑로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흑로호 열매가 피부미용에 뛰어나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재배가 잘 안된다면서 김해와 함안 등지에서 5000평~2만평을 심었는데 모두 실패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농사를 지어왔고 오랫동안 난을 길러왔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밤낮 기온차에 의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번 해보자 싶었다. 1000평의 밭에 자동화시설을 갖춘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900포기를 심었다.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내고 지금은 꽃이 피어 있다. 마치 축구공같이 생긴 열매가 맺히는데 그 열매가 미백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중국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에서도 욕심을 냈으나 수입이 안돼 사용을 못하고 있다. 재배에 성공하면 농가를 확산시켜 음료와 피부미용팩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야말로 6차산업에 대한 도전이다. 실패가 두렵지 않나.

“선천적으로 부지런하고 손이 재빠르다는 것이 내가 가진 큰 장점이다. 땅을 고르고,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나무를 심고, 지난 8개월간 일을 참 많이 했다. 이제 나무를 심은지 8개월, 가을-겨울-봄을 지났다. 잘 자라고 있다.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새로운 작목을 성공시키는 성취감이 남다르다. 5년 후엔 꼭 상품화에 성공할 것이다. 수박, 살구, 오이, 가지 등 과일과 채소도 많이 심어놨다. 여러 사람들과 나눠먹는 것, 그것도 농사 짓는 즐거움의 하나다.”

-30여년 난초를 키워온 게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난초는 어떻게 시작했나.

“대운산에 등산을 갔다가 우연히 난꽃을 보게 됐다. 생전 처음보는 꽃인데 꽃이 너무 예쁘서 관심을 갖게 됐다. 난초는 취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취미이자 동시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농사라고 생각한다. 9년째 울산난문화협회장을 하고 있다. 진귀한 꽃을 보는 재미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지만 난을 잘 기르고 그것을 판매해서 적잖은 수익도 창출한다.”

-인생이모작을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하던 일에서 은퇴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어렵다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무조건 남을 따라 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은퇴를 하기 전, 일을 하는 동안 뭐든지 새로운 도전을 위한 가능성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지만 난초를 해왔기 때문에 사업을 접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고 농사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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