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다리 긴 목이며 눈매는 매서운데
하얀 옷고름에 묻어난 그리움이
절벽 끝 구름 속으로 한 발 제겨 박찬다.

▲ 김정수 시조시인

두루밋과에 속하는 학은 탐욕을 부리지 않는 성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서리가 내릴 무렵 우리나라로 날아드는 철새다. 채우면 더 채우려는 사람과 달리 높은 자리를 비켜 나직한 숲에 마른 갈대나 풀로 둥지를 튼다. 머문 기간이 짧아 산란을 보기 어렵다.

긴 목과 가느다란 외다리로 물가에 서 있는 모습은 우아하지만, 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하얀 옷고름에 묻어난 그리움이’라니, 어찌 그리움이 사람만이겠는가.

미물도 머물 곳이 아니구나 싶으면 자리를 박찬다. 절벽 끝에서 구름 속으로 박차오른 학! 지상의 모든 집착을 떨쳐 버리고. 저 비상이 마치 절집 화두(話頭) 가운데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처럼 보인다. 김정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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