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현직에서 물러나 한가한 노후 위해
제주도에서의 전원생활 택한 친구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친지친구들에
한가로움을 방해받아 귀찮겠지만
건강이 허락치 않아 친구마저 뜸하면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즐겁지 않나’
옛 성현 공자의 말씀을 곧 실감할걸세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 같은 현직생활이 끝나면 좀 한가로운 노후생활을 보내기위해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꿈꿔본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 대상지로서 아마 제주도를 우선 생각해보지 않을까싶다. 육지와는 다른 특이한 남국적 풍광, 육지로부터 바다건너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거리감과 이에 따른 힐링감, 복잡한 국내 정치사회 상황에 대한 감각둔화와 정신적 자유로움, 편리한 의료 환경과 청결한 공기, 관광지 특유의 친절함, 올레길, 등반 등 각종 스포츠 여건,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특히 언어와 항공교통의 편리성 등은 은퇴생활을 편안하고 즐겁게 보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변덕스런 날씨만 빼면….

그래서 그런지 나의 고교동기생 480명 중 하늘나라로 이사(移徙) 간 60명을 빼고 지구상에 사는 420명 가운데 현재 5명이 입도(入島: 섬으로 이주한다는 말인데 대개 그 섬은 제주도를 뜻하는 것 같다)했다. 가수 이장희가 울릉도에 입도한 것처럼.

20여 년 전 제일 먼저 입도한 의사친구는 병원을 경영하다 일찌감치 문 닫고 어릴 적부터 꿈꾸어 오던 그림 같은 집을 직접 설계하여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집 뒤쪽으로 멀리엔 한라산, 가까이엔 오름이 버티고 있고 집 앞에는 일몰(日沒)의 바다가 절경이다. 집안에 있는 널찍한 가족용 극장에서 음악을 듣는 취미도 즐긴다. 또 한 친구는 건축가인데 바닷가에 설계실을 꾸미고, 대표로 있는 서울의 사무소업무는 모두 직원들에게 맡기고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다소 바쁘지만 여유롭게 살고 있다. 평생의 꿈이 설계책상에 엎드려 죽는 것이라고 했던 그의 꿈이 이루어지긴 쉽지 않아 보인다. 책상에 앉아있을 틈이 없는 요즘 같아서야 말이다. 또 한 친구는 뒤늦게 얻은 아들의 통학운전병 역할을 하며 막걸리와 한라산소주를 즐기며 산다. 또 한 친구는 경기도 여주와 제주도에서의 전원생활을 이주일간씩 번갈아하며 사는 한량이다. 마지막 한 친구는 제주의 어느 대학에서 한 과목 강의를 하는 외에는 여유롭게 선교생활을 하는 독실한 신앙인이다. 그들끼리는 틈틈이 번개모임을 하며 운동도 하고 숨겨진 횟집을 돌며 여유를 즐긴단다.

그런데 말이다. 지난 5월, 그들이 작당 모의하여 육지의 고교동기생들을 제주도로 초청한 운동행사가 있었다. 동부인이 아니었는데도 20명 정도가 참가하였다. 공식일정은 1박2일이었으나, 몇몇 친구는 모처럼 제주도에 왔으니 개인적으로 일정을 연장하여 체류하기도 했다. 입도한 친구들은 예정에 없었던 추가시간을 그들과 같이 했음은 물론이다. 저녁자리에서 옆에 앉은 입도한 친구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최근에 친구들 중 누가 왔었느냐고. 그는 지지난 주에는 A, B, C 세 명이 와서 이틀간 같이 운동했고 저녁은 모두 불러 같이 했으며 지난주에는 D, E 두 명이 와서 시간을 같이 보냈단다. ‘친구들과 여기서 만나는 이런 즐거움이 어디 있겠니?’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친구 옆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멀리서 제주도라는 관광지에 오는 친구들 입장에선 모처럼 오는 것이겠지만, 제주도에 사는 친구들의 입장에선 휴식이 아니라 노동일 수도 있겠다. 오죽했으면 한가로움을 즐기기 위해 입도했으나, 친구들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쉬기는커녕 괴로워서 못 살겠다고 3년 만에 다시 귀경(歸京)했다고 하는 사람마저 있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1980년대 초, 나의 동경(東京)유학시절이 생각난다. 지금이야 서울-동경 사이는 해외여행이라 말하기조차 어울리지 않는 셔틀플라이트(shuttle flight) 거리이지만, 당시에는 해외여행이 참으로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던지라, 혹시 미국이나 캐나다, 아니 유럽에서 귀국할 때도 동경을 들러 하루 이틀 머무는 것이 꽤 흔한 일이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쉼 없이 공부해도 될까 말까한 박사과정유학생의 바쁘고 척박한 생활 속에, 적어도 한 달에 두세 번은 친구, 친지들의 방문을 맞아야 했다.

모처럼 방문하는 그들은 ‘공부하느라 힘들겠다. 힘내라’고 위로격려하면서도 긴자(銀座)의 백화점, 아키하바라(秋葉原)의 전자상가, 신주쿠(新宿)를 거쳐 시부야(澁谷)의 주점까지 동행하는 일이 빈번했다. 안내와 통역의 귀찮음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금쪽같은 하루가 허무하게 날아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평생을 같이 할 친구친지에게 싫은 표정을 짓지 않으려 노력하기가 더 힘들었던 기억이 삼삼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동경을 들러 나를 귀찮게 했던 친구들과의 일들이 오히려 모두 아름답고 귀한 추억거리요 평생 얘깃거리가 되었다.

제주도에 입도한 친구들이여, 혹시 지금은 有朋自過頻來不亦煩乎(친구가 너무 자주 오니 이 어찌 귀찮은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조금만 기다려 보게. 무릎허리 아파 친구들 방문이 뜸해지면, 공자님의 말씀인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친구가 멀리서 나를 찾아오니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가 역시 옳은 말이었구나 하고 실감하게 될 걸세. 지난달 초대는 정말 고마웠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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