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엄씨 울산종중회 주도로

충의공 실기·실록 등 검토해

엄흥도 일대기 담은 책 펴내

충절의 대명사로 꼽히는 조선조 ‘엄흥도’(嚴興道)의 기록을 모아 그의 발자취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한 권에 담아 낸 <조선충신 엄흥도>가 나왔다.

엄흥도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다. 그가 영월의 호장으로 있을 때, 조선6대왕 단종은 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봉되고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1457년 10월24일 광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했다. 옥체는 강물에 버려졌고 이를 거두는 자는 3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내려졌으나 엄 호장이 아들 3형제와 함께 시신을 거두어 암장하니, 후일 충신으로 추앙을 받게됐다. 순조33년 공조판서에 추증됐고, 고종13년 ‘충의공’(忠毅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는 충의공 엄흥도에 대한 내용으로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한 이후 공주, 경주를 거쳐 울산(울주군 삼동면 금곡마을)로 옮겨와 숨어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않다. 후손들은 금곡마을마저 안전하지않다고 판단되자, 온산으로 옮겨 가장 산골인 산성마을에서 살았다. 현재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작동마을에는 그를 기리는 원강서원이 있다. 서원은 강당과 여수당을 비롯해 동제인 영수재, 서재인 형모재, 그리고 묘위실과 비각 등을 갖추고 있으며 해마다 충의공을 기리는 향제가 열린다.

<조선충신 엄흥도>는 원강서원에서 향사를 올리는 영월엄씨 울산종중회의 노력으로 출간됐다. 울산종친은 각 지역에서 발행한 충의공 실기와 단종을 비롯한 세조, 중종, 현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고종의 실록, ‘장릉사보’의 내용은 물론 엄호장실기, 충의공실기, 엄선생정충록과 같은 사료도 일일이 확인하고 족보와 대조하는 과정까지 거쳤다.

영월엄씨 울산종중회(회장 엄정의)는 “충의공(엄흥도)의 기록물을 책자로 발간하는 일은 단순하게는 후손들의 임무라고 하겠지만, 좀 더 넓게는 훌륭한 선조의 발자취를 유추해 기록물로 보존함으로써 자라는 어린이와 청소년 등 후손에게 올바른 삶을 알려주는 좌표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됐다”며 “충절과 신의의 선비정신으로 오늘날과 같은 현대사회에서 도덕성을 바로 세우는 교육의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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