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실버세대 성평등교육 기회 늘려야

노년기의 건강한 성 생활과
달라진 시대 흐름 깨우치는
노인대상 교육 필요성 증가
울산지역서도 2년 전부터
市 양성평등발전기금으로
노인 성인지교육 확대 추세

어느 노인복지관에서 성평등 강의가 열렸다. 젊은 강사가 70대 노인들에게 물었다. “어머님, 아버님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아시죠?” 수강중이던 20여명 노인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잘 알지!” “그 동화책, 손주한테 읽어주기도 했어.” 강사가 또 물었다. “그런데 ‘선녀’ 입장만 놓고보면,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 일까요?”

수강생 대부분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하지 못하자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선녀)가 목욕하는데, 누가 내 몸을 쳐다보면 관음입니다. 옷을 훔쳤으니 절도인데다 옷을 주겠다고 유인했으니 성폭력이죠. 아무튼 요즘 사회적 잣대로 해석하면 그렇게 돼요. 이런 동화를 곧이곧대로 손주들에게 들려주면 어떻게 될까요?”

전국적으로 노인대상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관심을 모은 사례는 서울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의 ‘손자녀 양육프로그램(손주병법)’이 꼽힌다. 한 기수 당 일주일에 한번씩 총 8회 수업을 하는데, 단순하게만 받아들이던 옛 이야기를 성차별적 잣대로 다시 바라보거나 “남자는 울면안돼!” “여자니까 예쁘게 웃어야지!”처럼 손주들에게 고정된 성역할을 무심코 강요했던 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군포시노인복지관에서는 올해부터 ‘노인성인식개선사업’을 시작했다. 동년배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노인 성상담사’를 양성하고 ‘찾아가는 노인 성교육’을 실시한다. 또 전문 성 상담사를 파견하는 ‘맞춤형 노인 성교육’도 시행 할 예정이다. 노년기의 건강한 성 생활과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적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울산에서도 이같은 노인대상 성평등 교육이 마련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는 시 양성평등발전기금으로 2년 전 시작된 노인대상 성인지 교육이다. 노인세대 성인지교육을 담당할 전문 상담사를 먼저 양성하고 30곳의 경로당을 직접 찾아가 세대공감 상황극을 펼치며 노인들이 다른 세대, 다른 입장에서 가족문제를 돌아보게 만드는 내용이다. 상황극에는 ‘일하는 며느리와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그 밖에도 ‘화장하는 남자’ ‘육아전담 남편’처럼 달라진 시대상이 반영된 캐릭터가 등장할 때도 있다. 이같은 상황극은 대부분 참가자들 간의 열띤 공방으로 마무리된다. 가치관이 다르니, 정답은 없다. 다만 달라진 세태를 실감하고, 스스로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절충안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이 사업을 진행한 강혜경(전 경성대 가정학 교수) 예술심리교육연구소장은 “세대간의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변화를 노인들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생각할 기회를 주고 스스로 방법을 찾도록 돕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노인대상 성평등 교육이 앞으로 더 확대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박기석 울산북구노인복지관장은 “건강한 성(性), 가장(家長)과 부부의 역할론 등 기존에 운영하던 교육도 적지않다. 하지만 범사회적으로 성평등 인식이 확산되면서 복지관 내 교육의 범위와 프로그램 영역을 좀더 넓혀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노년의 인식전환이 개인의 행복은 물론 남녀모두가 행복한 성평등사회의 밑거름이 된다는 취지에서 새로운 교육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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