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초록은 짙어져 성하(盛夏)의 계절, 들판은 온통 짙어진 초록의 검푸름으로 출렁거린다. 잎들의 초록이 짙어지는 이유는 가을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쏟아지는 빛의 입자가 점점 버겁기 때문이다.

식물은 색깔을 바꿈으로써 살갗을 통과하는 빛의 입자를 조절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신경을 통해 빛의 정보가 뇌에 전달되면 뇌는 피부 색소를 만드는 세포를 작동시킨다. 빛이 강하면 색깔이 진해지고 약하면 연해진다. 예외 없이 적용되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다.

햇빛이 피부를 통과하면 피부에서는 비타민D가 합성되고,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면 밤엔 저절로 수면 유도물질(멜라토닌)이 분비된다. 불면증은 아침에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침에 햇빛을 보지 못하면 밤에 멜라토닌 분비가 원활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상들이 어떤 환경에서 적응해왔는지,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건강의 중요한 요인이다.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일지라도 햇볕이 부족한 경우 심장병 발병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햇볕이 충분한 경우 전립선암이 줄어든다. 우리는 농경민족의 후손이며 우리조상들은 여름에는 강한 햇볕 아래에서 적응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지나치리만큼 햇볕을 두려워한다.

햇볕이 잘 드는 회복실의 환자는 통증이 줄어든다(J. M. Walch, 2005). 우울증에도 처방약만큼 효과적이다(N. Rosenthal, 1984). 겨울철에 자주 아픈 이유가 햇볕노출의 부족일 수 있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물론 햇볕의 이중적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민감한 피부를 지닌 이들에게는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도 있고, 햇볕이 부족한 지역에서 진화해온 백인계인종의 경우 피부암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고스란히 우리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다.

초록이 짙어져 강성해진 잎들은 태양 빛에 자유로운데 우리의 피부는 옅어져만 간다. 우리는 햇볕의 위험한 면은 알았지만 햇볕 없이는 진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노먼 도이지, 스스로 치유하는 뇌. 동아시아 2018). 햇볕은 이미 기피대상이 되었다. 스탠퍼드 대학의 세계적인 수면 연구가인 ‘니시노 세이지’는 매일 조금씩 단 몇 분만이어도 ‘햇볕을 쏘이라’고 권유한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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