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삶에 마음 한자락 다칠 때면
어린왕자가 전해준 위안들 떠올려
마음의 눈으로 삶의 이치 깨치려 노력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내년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 최근 일부 초선 국회의원들이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하며, 그동안 본인들이 생각했던 정치와는 너무나 상반된 현실을 지적했다. 당의 지시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당론의 소총수 역할 수행과 상대를 이기기 위해 서로 진솔한 대화를 찾아볼 수 없단다. 마약 같은 정치권력에 빠져들면 구름 위에 살고 있는 착각도 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잠시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만났던 여러 사람들이 생각난다. 국민의 ‘종복’이 되어야 할 권력자가 오히려 ‘복종’을 최고의 가치로 본다든지, 오로지 소유만 하려는 사업가, 마신다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또 술을 마신다는 술꾼과 칭찬만 듣고 싶어 하는 허영장이, 시키는 일만 하는 공무원 등 이상야릇한 어른들 세상이 부정하고 싶지만 아직도 우리 현실이다. 어린왕자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10만 프랑짜리 집 같은 숫자놀음보다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 그림을 이해해주는 친구가 더 필요한데 말이다.

살면서 심쿵! 하는 설렘이 점점 줄어들면서, 필자도 비로소 어린왕자가 이 외로운 지구에서 왜 그토록 친구 찾기에 열망했는지 이해가 간다. 친구를 원하는 그에게 여우는 먼저 길들여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곁에서 약간 떨어져서 조금씩 다가가되, 오해의 근원인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아무 때나 오지 말고 정해진 시간에 찾아오는 ‘의례’도 필요하단다. 그러면 약속한 4시가 되기 전부터 벌써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 행복해질 것이라고 했다. 돌아보니 필자도 참을성이 부족했다. 여우를 닮은 금빛 밀밭에 스치는 바람소리마저 사랑하게 될 때까지를 기다리지 못했다. 허영심에 찬 그 장미꽃처럼 까칠하게 굴었던 것 같다. 때론 의례도 무시했다. 그래서 어린왕자를 다시 찾아보았다.

어린왕자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수업시간이었다. 지금도 시인으로 활동 중인 김성춘 음악 선생님이 소개해주셨다. 본인이 가장 아끼는 어린왕자라고 했다. 행복한 미소를 짓던 선생님의 안경 너머 맑은 눈동자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어린왕자 스토리는 처음엔 알 듯 모를 듯 오묘하며 신비로웠다.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라고 여우가 가르쳐준 비밀처럼.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라 했던가. 필자도 이후 그와 친구가 되었다. 그와 함께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거짓보다는 진실을 쫓으려 애썼다. 적어도 내가 길들이는 것은 모두 소중하게 지키려 했다. 권위는 갖추지만 권위적이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장미꽃 5000송이가 아니라 한 송이 귀함을 안다. 물 한 모금에서도 찾고자 하는 진리를 찾을 수 있기에 허세보다는 분수를 알고 절제하려 했다. 그가 말했듯이 지금도 친구를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은데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마음으로 보려고 한다.

살다 보면 이래저래 마음을 다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인간의 탄생은 기적이다”라고 어느 철학자도 말했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임을 깜박 잊을 때가 종종 있다. 언젠가 우리 삶이 생각보다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고개 들어 밤하늘 소행성 B612에서 혼자 조용히 웃고 있을 어린왕자를 한번 찾아보자. 그가 모순된 우리 어른의 세계에 던져주는 따뜻한 위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필자도 이젠 사막의 오아시스같이 아름다운 노을도 맘껏 즐기고 싶다. 그리고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멋진 순간들을 내 마음속 깊이 오래오래 쟁이고 싶다.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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