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이 성공 가져오지만
과감한 시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선도적 개발 노력 현시점에 필요

▲ 이창기 한국은행 울산본부 기획조사팀장

지난 주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3진법 금속-산화막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였다. 2018년 9월부터 이번 연구를 지원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부 팹(FAB)에서 미세공정으로 동 반도체 구현을 검증하는 중이다. 세계 최초로 대면적 실리콘 웨이퍼에서 구현된 이 연구결과가 상용화 될 경우 메모리 반도체 및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 모두 기존의 2진법 반도체 공정이 3진법 공정으로 전환되어 반도체 제작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을 구현하는데 있어 다량의 반도체사용이 불가피하고, 웨어러블(wearable) 등 초소형화가 필수조건이 되면서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소자의 크기를 줄여 집적도를 높여왔다. 하지만 직접도 제고 작업이 반복되면서 이에 따른 물리적인 한계점도 인식되어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2배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더 이상 성립하기 어려운 점도 확인하였다.

하지만 3진법 반도체의 개발과 함께 0,1 즉 2진법 기반으로 처리되던 정보는 0,1,2의 3진법으로 처리되어 계산속도가 빨라질 뿐만 아니라 칩 소형화도 가능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숫자 128을 표현하기 위해 2진법으로 8개의 비트(bit·2진법 단위)가 필요하던 것과 달리 3진법으로는 5개의 트리트(trit·3진법 단위)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자의 집적도를 획기적으로 높임과 동시에 소비전력도 1000분의 1 수준으로 감소시켜, 단순한 가정으로는 현재 매일 충전하는 휴대폰을 1000일에 한번만 충전해도 되는 효과를 얻을 것이다.

3진법 반도체가 상용화되면 반도체 제작 공정 패러다임이 바뀜과 동시에 CPU내 캐시메모리의 할당량 및 RAM의 클럭 증가로 CPU 자체성능 향상 등 컴퓨터 전반의 성능과 응용도가 대폭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아직 2진법 방식이 적용되는 컴퓨터내 데이터 수용장치, 컴파일러·인터프리터를 비롯한 로우레벨 코딩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되며, 호환장치 등 각종 파생사업에 대한 기대도 상당하다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이번 개발에서 우리의 창의적인 기술로 신산업을 선점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그간 산업의 발전과정에서 창의적인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한 펭귄이 용감히 바다로 먼저 뛰어 들면 다른 펭귄도 따라서 바다로 뛰어드는 현상)의 역할보다는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로서, 주로 안전하고 검증된 기술을 보다 빨리 습득한 후 그 기술을 보다 개선하는 모습으로 발전을 이루어왔다. 안전한 전략으로 해외 성공 사례를 찾으려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력산업 대부분에서 한·중 경쟁강도가 보다 심화됨에 따라 모방·추격형 전략에 한계를 느껴 창의·선점형 혁신을 통한 고부가가치화를 목표로 하는 지금, 이번 개발은 좋은 롤모델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개발이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창의적인 사고와 발상의 전환이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와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개발도 3진법 반도체를 구현하는데 있어 상온에서 3가지 상태를 지닐 수 있는 물질을 새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 소자에서 누설되는 전류의 양으로 3가지 상태를 구분했다는 점에서 발상의 전환이 적은 비용으로 얼마나 큰 효용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과감한 퍼스트 펭귄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젊은 시절 과감한 도전을 시도하다 실패를 겪을 경우 나이 제한에 직면하여 좀처럼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현실이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성공하기 위해 평균 4회정도 실패를 겪고, 실패해본 경험을 유수기업에 취업한 경험 못지 않게 좋은 경력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따라서 과감한 시도중 보다 의미있는 실패를 가려내고,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제공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해준다면 우리 사회에도 퍼스트 펭귄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개발이 마침 반도체 부품소재 수출제한으로 경제보복을 하고 있는 일본에게 순수한 기술력으로 보여주는 경고성 메시지가 되는 동시에 이와 같은 선도적인 개발이 다방면에서 많이 양산되어 제조업 부흥을 위한 하나의 초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이창기 한국은행 울산본부 기획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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