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문 전 울산강남교육장

역사는 그 민족의 거울이다. 거울을 가까이 하는 사람일수록 용의가 단정한 것처럼 역사의 거울을 가까이 하는 민족일수록 국론이 통일되고 번영의 역사를 다시 창조하게 되는 사례를 많이 봐왔다. 역사는 현재의 눈을 통해서 과거를 보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그 나라의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드 폰랑케는 “지금까지의 역사는 과거를 판단하거나 윤택한 미래를 위해 교훈을 제공해 주는 기능이 있다”고 설파했다. 토인비도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다”고 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역사학자 웨드워드 핼릿카의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가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과거는 답할 것이다. “그래서 그랬다”고.

우리나라가 국론이 분열되고 당파싸움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던 시기는 1572년(선조1년)에 문신의 인사권을 놓고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선 당파싸움이 동인은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서인은 노론 소론으로 갈라져 사사건건 서로 발목을 잡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다가 세월이 흘렸다. 19세기 들어서면서 세도정치 외척정치가 등장하여 순조시대부터 철종까지 3대간, 60여 년 동안에 걸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는 사적치부에 모든 권력을 악용함으로써 백성들의 원성을 받게 되고 점점 망국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밖에 적이 있는 데 내부 싸움에 빠져 붕괴해버린 아테네 피렌체 같은 나라들이 그렇다. 작은 문제에 집착하면 큰 것을 놓친다. 단명으로 끝난 민족이나 국가가 대개 그렇다.

요즘 우리 사회가 마치 조선 후반기 모습과 닮아가는 듯하다. 여야가 정치를 하데 항상 민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리당략에 얽매여 갈등과 분열만 초래하고 있고 기득권세력과 개혁세력과의 갈등으로 개혁은커녕 말싸움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다. 희랍 철학자 달레스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남에게 충고하고 꾸짖는 일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위기일수록 합심하여 발을 맞춰야 한다. 6.25동란시 미8사단이 북진하다 강원도 제천 근방에서 인민군에 포위되었다. 그 때 미군 연대장 휴스 대령은 침착한 어조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고 외쳐 일치단결해 위기를 극복하고 인민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우리는 위기일 때 항상 같은 배를 탔음을 인식해야 한다. 중구난방으로 세월만 보내다간 다른 나라에 다 뒤지고만다. 반항 심리는 소영웅주의를 양산할 뿐이다. 경제를 살리고 안보를 튼튼히 하고 정치가 새롭게 개혁되기 위해서는 국론을 통일해 나가는 지혜를 모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다. 교육현장에서 교육시책 때문에 갈등을 빚고 산업현장에서 노사의 대립으로 파업이 잦고 광화문 광장에서 대립과 갈등의 시위군중이 떠날 날이 없다면 그 결과는 뻔한 일이다. 만사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무슨 일이던 그 원인에 정비례한다. 우리는 지난날 아픈 상처의 역사적 거울을 갖고 있다. 그 거울에서 깨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배워야 한다. 윤정문 전 울산강남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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