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합창지휘박사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픔’이라는 뜻을 가진 ‘비창(Pathetique)’은 시대와 나라가 다른 두 작곡가 작품의 제목이 됐다.

먼저 고전주의(1750~1825) 작곡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이다. 비극적인 강렬함이 주제인 ‘최초의 피아노 소나타’로 불린다. 월광 소나타, 열정 소나타와 더불어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슬픔의 표현인 비창을 쓸 때 역설적이게도 베토벤은 든든한 후원자로 인해 가장 풍요롭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베토벤은 당시 후원자였던 카를 폰 리히노프스키 공작(Prince Karl von Lichnowsky)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 피아노 소나타 8번인 비창이 작곡되어 출판된 1798~1799년은 청년기의 베토벤이 본격적으로 피아노 작곡에 매달려 5번부터~10번까지 피아노 소나타를 6곡이나 작곡했다.

같은 제목의 또 다른 ‘비창’은 낭만주의 시대(1825~1900)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이다. 차이코프스키는 1840년 태어나 광산 감독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우랄지역 여러 광산을 돌아다니는 유년기를 보내며 프랑스인 가정교사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하지만 부모는 음악 보다는 법관이 되기를 희망해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법대에 진학했다. 졸업후 법무성의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안톤 루빈슈타인 형제가 운영하던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나중에 이 음악학교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으로 개편되어 제 1회 입학생이 됐다.

차이코프스키가 비창 교향곡을 쓸 무렵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곡을 “종종 펑펑 울며” 썼다고 고백하며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진지한 곡”이라고 말했다. 이 곡을 써 놓고 내성적이며 소극적인 차이코프스키를 대신해 결정력이 탁월했던 동생이 ‘비창’이라는 제목을 달아주었다. 초연은 작곡가가 직접 지휘하였고 연주 9일 후에 차이코프스키는 당시 유행하던 콜레라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추천음악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1971년 EMI-카라얀 지휘.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합창지휘박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