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국수주의 치닫는 지구촌
국가의 통제력은 갈수록 더 커질듯
거대정부 아래 개인·기업은 매일밖에

▲ 민영주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얼마 전 새로 선출된 보리스 영국 총리는 산업혁명 그리고 현대 과학의 발원지로써 영국의 위상을 되찾자고 국민에게 호소하며 유럽연합으로부터 영국 탈퇴를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기치 아래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워 불법 이민을 차단하고, 급부상하는 중국과는 여러 서방국과 합세하여 전방위 충돌하고 있다. 이 와중에 아베 일본 정부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문제 삼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라는 선전포고와 함께 무역 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맞서 한 치에 물러섬 없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주요 언론들도 이에 발 맞춰 연일 항전의 의지를 드높이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 같다. 기업, 소상공인 그리고 국민들은 국가 간 싸움에 말 한마디 못하고 숨죽이고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있다. 괜히 잘못 입 뻥끗했다가 난처한 신세가 되지 않을까 두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지난 20여 년간 세계를 지배했던 자유무역주의는 이제 서서히 그 기운이 쇠퇴해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유무역주의는 되돌아보면 기업들에게 싼 인건비와 좋은 조건의 공장 부지를 찾아 국경을 넘어 비교적 자유롭게 자본과 지식 이동을 허용했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보다 높은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 간 분업화된 생산 연결고리를 형성하여 상생의 윈윈 전략이 통용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었다.

물론, 자유무역주의로 인한 문제점들도 많았다. 싼 노동력을 찾아 이동하는 자본의 특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이국만리 떨어진 타국 노동자들과 임금 그리고 생산성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 기존 노동자들은 임금하락과 비정규직 그리고 실직이라는 아픔을 견뎌내야 했고, 반면, 동남아시아 등의 신흥 국민들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살림이 나아지는 희망과 함께 열악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었다. 우리가 단돈 몇 만원에 질 좋은 와이셔츠와 바지를 사서 입고 누릴 수 있는 건 빈국(貧國)의 노동자 특히, 어린이들의 희생 덕임을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이러한 자유무역주의가 수십 년간 세계 경제의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작은 정부 즉, 민간 기업 활동에 대해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한다는 국내 그리고 국가 간 동의와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두(序頭)에서처럼, 이제 세계 주요 국가들은 과감하게 그러한 판을 깨고 보호무역주의, 국수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과연, 어떤 근본적 변화가 각국 정부 그리고 그 수장들에게 상당한 자국 경제의 희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나라와 대담한 무역전쟁을 벌일 수 있는 힘을 주었을까?

필자는 정부가 과거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촘촘한 정보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단체 그리고 기업에 대해 보다 샅샅이 파악할 수 있어 통제력이 강화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충분한 세수(稅收)를 확보할 수 있어 다양하고 큰 공공사업을 벌일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는 과거와 달리 정보력과 돈을 갖고 있는 큰 정부로 변해 있다.

요즘 많은 유능한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고자 한다. 이러한 열망과 추세는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보이는 공통된 현상이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공무원 선호의 이유는 안정된 직장이라서 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건 표면적 이유일 뿐 거대한 힘에 대한 무의식적 끌림, 즉 중력과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공무원만큼 현재 그리고 미래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은 없다.

결론적으로, 이제 우린 과거보다 더 정부의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야 한다. 개인, 소상공인, 단체 그리고 기업이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선 그 생각과 행보가 우선 나라의 정책과 부합하는 지 잘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민영주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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