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상상력 마음껏 펼칠 주변 환경
도시 규모 넘어서 세계로 뻗어나가
울산도 국제 자긍심 가질 문화 필요

▲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가보고 싶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나서부터 더블린이라는 도시에 대한 윤곽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더불어 점점 상상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속에서 주요한 무대가 되는 리피강의 모습을 보고나면 어려운 소설 율리시즈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소도 호텔이 아닌 도시 외곽에 있는 인치코어 지역의 민박으로 정했다. 물론 조이스의 소설 속에서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는 지역이다. 여행의 목적이 아일랜드의 야생적인 자연환경이나 유서 깊은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도시의 거리와 그 사이를 흐르는 강, 그리고 아직도 자취가 남아있는 조이스 시대의 건물들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의 조상들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려 했다.

먼저 이 외딴 섬나라의 도시가 어떻게 유네스코에서 문학의 도시로 정할 만큼 세계문학의 거장들을 많이 간직한 도시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제임스 조이스는 물론이고 ‘고도를 기다리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희곡작가 사무엘 베케트,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버나드 쇼,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이니스프리호수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 시인 예이츠, 150년이 지난 지금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오스카 와일드. 이 이외에도 거리의 동상으로 살아있는 예술가들은 수없이 많았다. 이들 모두 더블린이라는 땅에서 자랐고 리피강의 거닐며 생각을 키웠으며 세계를 떠돌면서도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더블린의 숨결을 그렸다. 그리고 말년에는 더블린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이 도시의 무엇이 이들의 생각에 자양분의 역할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조이스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트리니티 대학에서 하루를 보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유명한 고서적 도서관을 보기 위하여 줄을 서고 있었다. 그러나 이 외진 섬의 작은 도서관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이 소장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문학의 거장들이 영감을 받으며 젊은 시절을 보냈으리라고 상상하기에는 대학의 규모가 너무 작아 보였다. 대학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의 규모가 대가의 탄생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 곳에 있는 선생과 학생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그 대학의 크기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 상상력과 기개는 더블린 사람들의 품성 속에서 자라난 것이리라.

이국의 여행객에게 쉽게 말을 걸어주고 받아 주는 곳은 역시 식당이나 술집 밖에 없다. 홀로 거리를 떠돌다 지치면 사람들과의 대화가 많은 위로가 된다. 리피강이 바라다 보이는 생맥주 집에서 저녁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유럽의 생맥주 집은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분위기가 있다. 우리는 보통 생맥주를 시키면서 종류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생맥주 꼭지가 다섯에서 많게는 열 가지에 이른다. 어떤 종류의 맥주가 맛이 있느냐고 물으면 주인이 아주 난감해 한다. 사람의 입맛이 다르고 생맥주의 종류에 따라 향과 맛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든 종류를 시음해 보라고 권유하는 곳도 있다. 생맥주 한잔 먹으려다 종업원의 너무 진지한 권유에 당황하는 경우도 더러 경험했다.

더블린의 생맥주 집도 마찬가지였다. 조이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흑맥주를 먹고 싶었다. 더블린에서 흑맥주를 시키면 당연한 듯이 기네스 맥주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 맥주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말을 던지면 자랑이 줄줄이 엮어져 나온다. 단순한 맥주가 아니라 더블린 사람들의 자부심 같다. 심지어 민박집 주인도 여행객들은 꼭 더블린의 흑맥주를 먹어보아야 한다고 권유한다. 그러면서 기네스 맥주공장을 가보라고 권한다. 온 도시가 기네스 맥주의 간판으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네스 맥주는 단순한 맥주회사의 상표가 아니라 더블린 사람들의 자부심의 증표였다. 각 지역마다 자랑하는 맥주가 있지만 더블린 사람들이 흑맥주에 대해 가지는 애정을 넘어서지 못할 것 같다. 더블린의 문학 대가들이 사랑했던 고향의 기억에는 흑맥주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흑맥주와 문학 이 둘의 관계가 궁금해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도시다. 더블린.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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