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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주년 광복절 이춘락 할아버지 이야기, “소년들 생사 강요당했던 역사 잊지말길”74주년 광복절…일제말 소년비행병 훈련까지 참여했다 돌아온 이춘락 할아버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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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3  20: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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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제 육군소년비행병 학교 훈련까지 참여했다 극적으로 한국으로 되돌아 온 이춘락 할아버지가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일제의 대대적 소년병 모집
학교 교사들 나서 지원 강권
울산서 단 2명 선발된 비행병
17살에 일본 가 교육 받으며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학교측에 수차례 귀향 졸라
‘자살특공대’ 운명 겨우 피해
가혹했던 시절 잊으면 안돼

15일은 제74주년 광복절이다. 한일간 경제전쟁이 뜨거워지면서 올해 광복절은 여느해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1928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몸소 겪은 이춘락(92·울산시 중구 복산동) 할아버지에게 경험담을 요청했다. 그 시절을 책으로만 배운 청소년에게 울림이 다른 메시지를 안겨줄 것 같다.

이춘락 할아버지의 경험담은 첫 마디부터 놀라웠다. “내가 좀체 어디가서 이런 말을 잘 안하는데…. 나는 일본제국 소년비행병이 될 뻔 했어. 까딱 잘못했으면 가미카제 독고다이(일명 자살특공대)로 전쟁에서 죽을 운명을 피한거지.”

일제는 태평양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1940년대 초반, 전장으로 보낼 소년병 모집을 대대적으로 늘렸다. 조선인 소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일럿’을 꿈꾸던 이춘락 할아버지는 당시 일본인 담임교사의 강권으로 열일곱살 나이에 소년비행병에 지원했다. 일본 벳부옆 오이타 육군소년비행병학교에 입교까지 했으나, 교육 도중 3개월 만에 되돌아 왔다.

가미카제의 주력은 전문군인이 아니라 대부분 단기 비행훈련을 받은 학도병이나 10대 후반 소년병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도중에 돌아왔지만 다른 훈련병들은 짧게는 수개월, 길어봐야 1년여 훈련만 받은 뒤 곧바로 태평양전쟁에 투입됐다.

가고시마 지란특공평화회관에는 이같은 소년비행병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데 전사자 명단에 한국인 16명도 새겨져 있다. 그 중 한명은 ‘1925년 경남 울산’에서 출생한 ‘이와모토 미츠모리’(岩本光守·한국이름 불명)로 ‘1945년 3월26일, 오키나와 해상에서 전사’했다. 그의 나이 꽃다운 스무살이었다.

취재진을 통해 이와모토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전해들은 이 할아버지는 “당시 하상면(현재 병영일원) 출신의 한 소년병이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와모토’와 동일인 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 또한 교육을 끝까지 마쳤다면, ‘이와모토’처럼 독고다이로 삶을 마감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 북구 달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 할아버지는 울산공립국민학교(양사초등 전신) 고등과를 다녔다. 1944년 일본인 교사는 “국가형편이 어려우니, 공부보다 군에 나가서 전투를 해야한다”고 선전했다. 모든 학생들에게 소년비행병 모집에 응시하라고 권유했고, 거의 모든 전교생이 응했다. 대구까지 올라가서 이틀간 신체검사를 받았고, 합격자는 부산으로 가 다시 필기시험을 치렀다. 울산지역 수많은 10대 소년 중 이 할아버지를 포함해 단 두 명만이 최종 선발됐다.

“일본인 교사들이 자원을 하라고 많이 권했어. 나처럼 비행병 말고도 해병대, 전차병도 모집을 했지. 인력이 모자라니, 젊은 아이들을 어떻게든 빨리 양성시켜 전장에 내보내려 했던 거 같아. 왜 자원을 했냐고, 안 갈 수도 있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 때 분위기로는 안 가고는 못 배겼어. 국가가 필요로하니 꼭 보내야 한다고, 교사들이 직접 나서 학생이나 부모를 얼마나 설득했는지….”

일본으로 건너가 교육을 받은 지 한달여 즈음, 우수인재로 뽑혀왔다는 자부심 대신 이대로 가다간 전장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지않은 가세에 아버지와 본인까지 2대째 독자인데다 줄줄이 여섯 명의 여동생을 두고있어 본인이 죽을 경우 집안은 쑥대밭이 될 것 같았다.

“교육사관인 중대장(현역 중위)을 몇번씩 찾아가서 돌려보내 달라고 무조건 매달렸지. 불가능할 것 같더니, 두어달 지나니까 학교장이 허락을 했다는 거야. 얼마나 반갑던지. 내 추측이지만 우리 부친이 징집을 미뤄 달라고 알게모르게 부탁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호적등본 같은 걸 떼보고 집안사정이나 어린 나이가 참작됐을 수도 있고.”

이 할아버지는 울산으로 귀향한지 1년도 안돼 해방을 맞았다. 울산읍내에서 청년들이 몰려다니며 만세를 부르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는 울산우체국 사무원으로 근무하다 국군에 입대 해 한국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다. 이후에는 방어진 상진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마지막 양사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한평생 교육자로 살아왔다.

“나의 소년기는 죽고사는 문제가 고민이었어. 시대가 달라졌다고는하나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지. 우리 젊은이들이 그 역사를 잊지 않길 바라.”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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