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휩싸인 집단착각 표출 우려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집단 지성으로 극일 실마리 찾아야

▲ 김도하 내과의원장

필자는 평소 일본 같은 선진국이 이웃에 있는 것은 나라 발전에 참 다행이라 생각해왔다. 필자의 전문분야인 위·대장내시경학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가장 앞선 국가다. 위내시경이란 기계를 세계에서 처음 만들었고, 현재 국내 위·대장내시경 기계의 거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한다. 30~40년 전 우리나라 내시경학이 발전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한국 학자들이 일본에서 연수하면서 배웠다. 일본에 소위 스승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도 일본암센터 등에서 두 차례나 단기연수를 받아 학문적 역량을 키웠다. 필자가 미국에 장기연수를 갔을 때는 일본인 동료 연구자와 친구처럼 서로 돕고 지냈으며, 귀국 후에도 우정을 유지했었다. 필자의 경험에서만 보면 일본은 고마운 나라였다.

그러나 필자도 일본을 정말 싫어한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반일정서는 어릴 적부터의 교육적 영향과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 태도 등에 기인한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 진행 중인 소위 한·일 경제전쟁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어느 때보다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각자 일본에 대한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고, 자유로운 문명국가에서라면 이러한 점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승자 없는 게임이라고 했다. 아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정부에서는 아직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고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일본 교민과 유학생들, 일본과의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관련 기업들, 그리고 한국주식에 투자한 수백만의 투자자들이 재산 손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는 점은 이러한 승자 없는 게임은 어떻게든지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경상일보 지면에도 발표된 정치평론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번 사태를 막을 만한 시간과 정책들이 가능했다고 하니 더욱 아쉽다. 만일 이념이나 명분보다 실용을 우선으로 했다면 이런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분쟁을 시작한 이상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가의 자존심 문제다. 다행히 국민이 발 빠르게 집단 지성을 발휘하고 있다. 알아서 불매운동하고 여행도 가지 않는다. 여러 아이디어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이를테면 혐한 방송에 앞장선 일본기업을 아예 한국에서 퇴출시킬 정도의 소위 ‘한 놈만 팬다’는 불매운동 전략이 모든 일본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란 의견이 소개되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참으로 대단한 응집력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냉정을 잃어버린 여론에 휩싸여 집단 착각이 표출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이런 것은 민주사회가 꼭 경계해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집단 착각은 이런 것이다.

첫째는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이다.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약자였고 주로 당했다고 더 도덕적이란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된다. 국제분쟁에서 도덕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둘째는 우리가 기술이나 경제력에서 빠른 시간 안에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여러 경제 및 과학기술 데이터로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아직 체급이 다르다, 씨름이나 격투기를 할 땐 체급에 따라 시합을 한다. 우리의 바람과 현실의 간극을 냉정히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셋째는 일본이 망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다. 과연 그럴까? 서로 많은 것을 주고받으면서 경쟁하는 이웃 선진 강대국이 망하면 우리도 함께 힘들어질 수 있다. 넷째로 이번 분쟁에 우려를 나타내는 언론이나 인물, 한국기업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판이나 불매운동 등을 애국적 행동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한국인 중 친일파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모두가 이번 사태의 피해자들일 것이다.

국내산은 문제가 없고,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면 많은 국민이 광우병에 희생될 거라고 전국이 불타올랐지만, 의학적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2008년 광우병사태를 겪으면서 필자는 집단적 착각에 의한 광기 같은 것을 본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다. 이번 분쟁도 집단적 착각이 아닌 집단적 지성으로 극일의 실마리를 찾아가길 바란다. 김도하 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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