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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교단일기
[교단일기]내일, 학교에서의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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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3  21: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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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현 남목중 교사

‘인생작을 만날 준비, 됐습니까?’

책의 띠지에는 자신 있게 인생작이라고 적혀 있었다. N사에서 웹툰으로 연재되는 동안 독자들이 매기는 평균 별점이 만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라면 사족을 못 쓰던 나. 요일마다 구독하는 웹툰이 있고, 소장가치가 있다 싶으면 망설임 없이 단행본을 구매하고 있기에 이 <내일>이라는 작품은 당장 사서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만화는 취업준비생 최준웅이 한강에 뛰어내려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려다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정에 없던 의식불명 기간 동안 준웅의 영혼은 저승의 위기관리팀 소속 저승사자 2명과 함께 죽으려는 사람들을 살리는 업무(?)를 맡아 이곳저곳을 다니게 된다. <내일>의 이야기들은 모두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자살에 대해 다루고 있다.

2권까지 출간된 단행본에는 5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중 눈길을 끈 이야기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학교폭력을 다룬 ‘낙화’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에게 심각한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던 아이가 학교 옥상에서 아래로 떨어지던 찰나, 위기관리팀의 저승사자 구련이 아이를 구해낸다. 손을 내밀면서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구련에게 아이는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지금이 싫었다고 고백한다. 구련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칙으로 가해자들을 응징하고 있을 무렵, 위기관리팀의 또 다른 저승사자 임륭구는 학교폭력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만 하고 있던 아이의 담임교사를 찾아가 스스로 반성하게 만든다.

‘낙화’는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피해자, 쉽게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 주관 없이 분위기에 휩쓸리는 동조자, 도와주고 싶지만 가해자들이 무서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주변인까지. 내가 여태껏 봐왔던 학교폭력의 사례들은 천태만상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모두 ‘낙화’ 속 괴롭힘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년에 가까운 근무기간 늘 담임을 맡으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들을 여러 명 만났다. 대부분 학교폭력이나 교우관계로 인한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들의 손목에 그어진 짙고 옅은 자국은 마치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문신처럼 새겨놓은 것 같았다. 담임교사나 상담교사와의 꾸준한 상담으로도 개선이 되지 않는 위기 학생들은 정서·행동특성검사를 받고 관심군으로 분류될 경우 치료를 연계해서 교육청과 협약된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을 병원으로 보내기 전, 선생님이 네 편이 되어 너를 오롯이 공감하며 너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겠노라고 손을 내민다면 학생들은 삶에 대한 일말의 의지를 부여안고 더 찬찬히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을 것이다. 아직 그들은 지는 꽃이 돼서는 안 된다.

오늘도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곧 있으면 바쁜 일과 속에서 쏜 살같이 내일이 온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있더라도 교사들의 시간과 학생들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쓰여진다. 그 안에는 지금 당장을 괴로워하며 쉬는 시간과 하교 시간을 두려워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오늘 그리고 내일. 학교에서의 우리-교사들은 그런 누군가를 찾아 따뜻하게 안아주어야만 한다. 이정현 남목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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